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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방에 벌레 잡는다고 고함친 날

2026-10-12 20:41:13 조회 1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자취방에 벌레 잡는다고 고함친 날, 진짜 그날 이후로는 “아무도 안 들리겠지” 같은 낙관을 하면 안 된다는 걸 뼈저리게 배웠다. 원래 나는 벌레가 나오면 조용히 휴지 뭉치 들고 체념하는 타입인데, 그날은 왜인지 갑자기 에너지가 몰려서 “잡는다!”를 외치게 됐다. 그것도 혼자 사는 집에서, 그것도 새벽에.

그날 밤, 부엌 쪽에서 뭔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불 켜고 보면 별거 아닌데, 불 끄면 또 들리고, 내가 끄면 더 요란해지는 느낌. 그래서 결국 전등을 켠 채로 냉정하게 관찰해야 했는데, 나는 그걸 못 했다. “야, 나 지금 보고 있어”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오더라. 누가 듣는지 모르면서.

벌레는 바닥을 뚫고 사라졌다가, 다시 전자레인지 옆에서 나타났다. 크기는 거창한 건 아니었는데, 내가 예민한 건지 아니면 그 녀석이 일부러 날 자극하는 건지 모르겠다. 순간 머릿속에 유튜브에서 보던 벌레 퇴치 영상이 떠오르는데, 영상 속 사람들은 다들 태연하고 손놀림이 빠르다. 나는 태연이 아니라 그냥 분노가 먼저 올라왔다.

그래서 내가 한 행동은 간단했다. 휴지 들고 다가가서 “자, 끝이야!”라고 말한 다음, 정확히 그 타이밍에 큰소리로 고함을 쳤다. “어어어어!” 같은 느낌으로. 사실 잡는 게 목적이면 속으로라도 해야 하는데, 그게 입 밖으로 먼저 나간 거다. 내가 고함을 치는 동안 벌레는 더 빠르게 도망갔고, 나는 그걸 쫓아가며 또 한 번 외쳤다. “나와!”

여기서부터가 문제였다. 내 집이야 뭐 소리 나도 괜찮겠지 했는데, 그 고함이 복도까지 퍼졌는지 바로 옆 방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니, 뭐야…”라고 들리더라.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아, 이건 벌레가 아니라 내가 소리 지른 사건이구나. 벌레는 이미 승리했는데, 나는 관객을 부른 셈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 이후로는 정적이 왔다. 그런데 정적이 아니라, 누가 복도에서 잠깐 멈칫한 정적 같은 거. 그 다음에 들린 말은 더 선명했다. “괜찮으세요?” 누군가가 내 쪽을 향해 묻는 소리였다. 나는 당연히 괜찮다고 해야 하는데, 입에서는 자꾸만 변명이 나오려 했다. 그런데 변명을 하기도 전에 또 들렸다. “벌레 잡으시는 거면… 방충망 확인해야 할 것 같아요.”

순간 내 얼굴이 뜨거워졌다. 내 방은 지금 전쟁터인데, 옆 방 사람은 아주 현실적인 조언을 한다. 그래서 나는 어설프게 커튼을 들추듯 손을 흔들며 “아… 네,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벌레는 도망갔고, 나는 고함으로 이미 체력을 전부 썼고, 조언까지 받았다. 근데 그 사람이 더 놀라운 소리를 했다. “밤에 소리 많이 나서… 혹시 경찰 부르는 상황인 줄 알았어요.”

그 말 듣고 나는 진짜로 웃음이 나올 뻔했다. 벌레 잡겠다고 고함친 걸 경찰이랑 연결시키다니, 이게 자취의 현실인가 싶었다. 나는 결국 조용히라도 마무리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대충 청소기부터 찾았다. 청소기를 꺼내자마자 벌레가 보이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바닥을 훑어보면서 속으로 “제발 오늘은 무사히 끝내자” 하고 빌었다.

잠깐 시간이 지나고 나서, 주방 서랍 쪽 틈에서 작은 소리가 다시 났다. 그래서 또 놀라서 숨을 크게 들이쉬는데, 이번에는 고함이 아니라 그냥 아주 낮게 “진짜 너…”라고 했다. 옆 방에서 들릴 만큼 크게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내가 낮게 말해도 이상하게 들리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 벌레는 그냥 나가버렸고, 나는 그제야 안도했다. 대신 옆 방 사람 생각이 났다. 그 사람은 지금도 “방충망 확인”을 추천한 사람으로 기억될 텐데, 나는 벌레보다 먼저 사회적 평판이 무너진 셈이었다.

새벽 공기가 좀 식고, 나는 물티슈로 주방 바닥을 닦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그렇게 고함을 쳐서 벌레가 쫓겨난 게 아니라, 내 자신이 스스로를 놀라게 한 거였다는 걸. 무엇보다 옆 방 사람이 “괜찮으세요?”라고 물어봤다는 게 아직도 웃겼다. 그 뒤로는 벌레가 나와도 절대 큰소리로 외치지 않는다. 대신 아주 작게, ‘조용히 처리하자’ 하고 마음속으로만 말한다. 근데 가끔은 생각이 난다. 그날 옆 방에서 문 열었던 사람이, 나중에 복도에서 누군가에게 “아, 저분은 벌레 퇴치 전문가예요”라고 말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 그러면 나도… 다음엔 방충망부터 점검해보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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