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비에 전기만큼이나 마음도 빠지더라
입주하고 얼마 안 됐을 때부터 느꼈어요. 관리비 고지서 열어보면 전기요금처럼 마음도 같이 빠지더라구요. 처음엔 “설마 설마, 전년도랑 비교하면 이 정도면 괜찮겠지” 했는데, 숫자들이 자꾸 제 마음을 먼저 결제해 버리는 느낌이랄까요.
상황은 이랬어요. 전기만 많이 나온 날이면 전기요금만 올라갈 줄 알았는데, 그날따라 승강기 사용료, 공용부 청소비, 난방 분담 이런 게 줄줄이 따라오더라고요. 그러니까 전기 계량기 숫자가 올라가면 제 지갑은 물론이고, 제 멘탈도 같이 상승했다가 바로 하락하는 구조였어요. 고지서를 볼 때마다 눈이 먼저 감기고, 그 다음에 한숨이 나오더라구요.
진짜 문제는 “왜 이렇게 많이 나왔냐”를 물어볼 때였어요. 관리사무소에 전화하면 항상 같은 답이 돌아와요. “공용 전기 사용량이요, 승강기랑 조명 포함이라서요.” 그 말 들으면 제가 뭘 했는지 기억을 더듬게 돼요. 제가 승강기를 탄 적이 거의 없는데, 혹시 제 대신 누가 밤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다니는 건가 싶은 거죠.
그래서 저는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어요. 관리비 내역서에 공용전기가 표시돼 있길래, 그게 정확히 뭘 말하는지 찾아봤죠. 다들 아시겠지만 “공용”이라는 단어는 참 넓더라고요. 조명, CCTV, 대기전력, 로비 환기, 문 자동개폐… 결국 제 생활방식이랑 상관없이 건물 전체가 제 마음 위에 전기 담요를 덮어씌우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웃기면서도 슬펐던 건, 전기요금이랑 비슷한 타이밍에 정신이 같이 소비된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밤에 잠깐 TV를 틀었다 싶으면 다음 달에 전기요금이 ‘아, 이 정도는 생활인가?’ 하고 올라가고요. 그때부터는 제가 방 안에서조차 전기 절약을 하게 됩니다. “에어컨은 마음으로 틀자” 같은 결심도 해봤는데, 실제론 리모컨을 잡는 손이 늘 무거워져요.
한 달은 정말 빡세게 나왔어요. 고지서를 받아 들고 숫자를 세는 동안 이미 마음이 먼저 지쳤고, 그 상태로 문자를 확인했습니다. 관리비 연체 유의 안내… 이건 아니잖아요. 연체는 제가 아직 안 했는데, 건물이 제 미래까지 미리 계산하는 느낌이더라고요. 그날은 전기요금이랑 마음이 동시에 빠져서, 침대에 누웠는데도 “내가 왜 여기까지 왔지”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결국 질문을 제대로 해보기로 했죠. 관리사무소에 가서 “전기 말고도 왜 이렇게 다른 항목이 같이 뛰었는지, 공용 사용량이 얼마나 늘었는지 자료 볼 수 있냐”고 물어봤어요. 담당자분이 잠깐 기다리라더니 종이 뭉치를 가져오더니, 결론은 결국 “계절 영향이랑 운영비 조정이 있었어요.” 이 말이 참… 공감은 되는데 마음을 달래주진 않더라고요.
그래도 저는 포기 못 하고, 나름대로 절약 모드에 들어갔습니다. 대기전력 차단 멀티탭도 사고, 조명은 자동 꺼지는 걸로 바꿨고, 샤워 시간도 줄이고, 심지어 냉장고 문은 한 번에 닫는 연습까지 했어요. 그런데 희한한 건, 제가 절약하려고 노력할수록 관리비는 더 꼼꼼하게 저를 따라오더라구요. 마치 “너 절약하는 거 알아. 대신 공용에서 또 새어 나온다” 이런 표정으로요.
결국 깨달았어요. 관리비는 전기만의 문제가 아니더라구요. “내가 얼마나 조심했는가”보다 “건물이 어떻게 돌아갔는가”가 더 크게 작용하는 느낌. 그러니까 저는 매달 전기요금을 내는 동시에, 건물과 함께 살아가는 비용이라는 걸 학습하는 중이었던 거죠. 그래서 요즘은 고지서 받을 때마다 마음부터 다독입니다. 숫자는 나한테 와도, 제 멘탈까지 끌고 갈 필요는 없다고요.
그리고 가끔은 생각해요. 다음 달 전기요금이 또 오르면, 그건 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승강기랑 로비 조명들이 제 기분을 시험하는 시험지”일지도 모른다고요. 웃기죠.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생각 하나로 괜찮아집니다. 전기만큼이나 마음도 빠져나가던 시절을 지나고 나니까, 이제는 고지서를 봐도 “또 왔네” 하고 피식 웃게 되더라구요. 관리비가 제 마음을 가져가더라도, 저는 그 마음을 다시 돌려받을 계획이 있어요. 최소한 다음 달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