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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 채팅에만 답 잘하고 거래는 미루는 사람

2026-10-14 15:41:11 조회 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당근 채팅에만 답 잘하고 거래는 미루는 사람이 진짜 있더라. 처음엔 “오 이분 센스 있네” 싶었는데, 대화가 길어질수록 묘하게 시간만 늘어나더라. 딱 그 부류. 구매 의지보다 문자 템포가 더 빠른 타입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중고로 물건을 올렸는데, 그 사람은 올라온 글 보자마자 바로 연락을 걸더라. “네~ 아직 판매 중이죠?” “가격은 괜찮아요.” 이런 식으로 반응이 엄청 즉각적이야. 채팅 읽는 순간, 답장도 동시에 도착하는 느낌. 심지어 사진도 더 물어보는 게 아니라, “상태 좋아 보이는데요” 하고 바로 칭찬부터 박더라.

솔직히 그때만 해도 기분이 좋았지. 빨리 거래하면 되니까. 그래서 나는 “네, 상태는 사용감 조금 있고, 구성품은 그대로예요. 직거래 가능하고 택배도 됩니다”라고 정리해서 보냈어. 그랬더니 바로 “좋아요! 그럼 오늘 중으로 볼 수 있을까요?” 하고 오자마자 또 속도를 붙이더라.

문제는 여기서부터였어. 내가 “가능한 시간은 오후 6시 반 이후예요”라고 답하니까, 그 사람도 곧바로 “네네! 6시 반에 맞출게요. 제가 바로 갈게요.” 이 말이 너무 자연스러웠어. 딱 약속 잡히는 느낌. 근데 막상 6시 반이 다가오면, 채팅이 이상하게 조용해지는 거야. 아니, 조용하면 그나마 괜찮은데, 조용하다가 다시 나타나.

한 번은 “방금 일이 길어졌어요. 죄송합니다 7시로 변경 가능할까요?” 그러더라. 나는 “네 그럼 7시요” 하고 흔쾌히 넘어갔지. 또 7시가 되면 “지금 집에서 나가는 중이라서 10분만요” 하고, 답장은 또 엄청 빠르게 오는데 실제 약속은 늘 조금씩 늦어져. 내가 보기엔 시계는 계속 앞으로 가는데, 그 사람의 약속은 계속 뒤로 슬라이딩되는 느낌이었어.

다음날에도 비슷했어. 이번엔 “내일 갈게요. 오늘은 동선이 안 맞아요”라고 미리 말해놓고, 내 글을 계속 체크하는지 답장이 바로바로 오더라. “네 확인했습니다.” “구성품 사진 다시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감사합니다” 같은 말들이 계속 쌓이는데, 정작 “몇 시에 어디서 만나실까요?”로 가면 갑자기 사라져. 대신 다른 질문만 계속 늘어나는 거야. 마치 거래를 하려는 게 아니라 채팅을 수집하려는 것처럼.

그래서 내가 “그럼 장소는 여기로 정하면 될까요? 내일 5시에 제가 나갈게요. 가능하실까요?”라고 딱 정리해서 물었더니, 또 바로 “가능합니다! 약속 잡겠습니다!” 하고 반응이 오더라. 근데 그 뒤에 덧붙이는 말이 늘 똑같아. “혹시 근처 주차도 편할까요?” “혹시 제가 도착하면 5분만 기다려주실 수 있을까요?” 이런 것들. 사소하지만 계속 쌓여서 결국 약속 시간이 다가오면, 아주 자연스럽게 “죄송한데 제가 지금 조금 늦을 것 같아요”로 바뀌어.

어느 순간부터 나는 확신했어. 이 사람은 거래를 ‘미루는’ 게 아니라, 거래가 되는 순간이 오면 연락을 감당 못 하는 타입이구나 싶더라. 채팅은 되게 잘하는데, 실제 현장에서는 준비를 못 하는 듯한 느낌. 그래서 나는 마지막으로 “혹시 오늘 8시까지 가능하신가요? 가능하면 확정하고, 아니면 다른 분께 넘어가도 될까요?”라고 물었어. 이때도 답은 바로 왔지. “네! 오늘 꼭 갈게요. 확정 맞습니다.”

그리고 8시가 되었을 때. 메시지는 또 오더라. “지금 출발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일이 생겼어요. 죄송합니다.” 이 문장 하나를 보내놓고는, 그 다음부터는 또 다른 질문과 짧은 감탄만 반복해. “사진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상태 괜찮겠죠?” “포장만 잘 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같은 말들. 근데 사람 심리가 다 보이잖아. 이미 확정이었고, 나는 기다릴 시간이 없는데도 계속 템포를 유지하는 거야.

결국 나는 거래를 접었어. “죄송하지만 일정이 자꾸 바뀌어서 더 진행은 어렵겠습니다.” 보내고 나니까, 그 사람은 마지막으로 딱 한 마디를 남기더라. “네 알겠습니다. 다음에 또 시간 맞으면 연락드릴게요.” 그 말이 너무 매끄러워서 웃겼어. 마치 내 물건이 아니라, 내 시간을 구매하려고 했던 것 같아서. 당근 채팅은 빨랐는데 거래는 느리던 그 사람… 지금도 가끔 보면, 같은 패턴으로 다른 글에 답하고 있겠지 싶다. 답장은 프로, 약속은 아마추어—그게 제일 킬포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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