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내 차를 대신 끌고 나간 날
가족이 내 차를 대신 끌고 나간 날, 그날은 그냥 평범한 토요일인 줄 알았다. 아침에 눈 떴는데 차키가 보이는 자리엔 손바닥만 한 메모지 하나만 덩그러니 있었고, 거기엔 “잠깐만 빌려요” 같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문제는 ‘잠깐만’이 우리 집 언어로는 보통 반나절이 아니라 ‘상황 생기면 하루 종일’이 된다는 거였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차가 집 앞에 있으니 누가 잠깐 장 보러 가는 정도겠지, 하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있는데 엄마가 거실에서 “저기… 차가 너무 깨끗해서 눈부셔”라고 말하는 게 들렸다. 그 말이 왜 들렸냐면, 그 순간부터 이미 대화가 시작됐던 거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깨끗한 표정을 짓고 “누가 탔어?”라고 물었고,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아빠랑 동네 좀 갔다 올게”라고 말했다.
아빠는 더 당당했다. “네 차가 좋으니까 편하지, 뭐.” 이 한마디로 끝이었다. 그 말이 들리는 순간부터 머릿속에서 ‘내 차가 언제, 어떻게, 어디에, 누구 손에’라는 질문들이 동시에 폭발했다. 나는 차에 손대는 걸 싫어하는 편이라서, 누군가 내 차를 쓰면 예민해진다기보다 ‘내 물건을 남이 마음대로 다루는 느낌’이 싫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괜찮아, 어차피 차는 사람 태우는 거지”라고 말하며 이미 가방을 챙기고 있었다.
문제는 차를 ‘대신 끌고 나간 방식’이었다. 보통은 내비게이션 업데이트부터 확인하고, 보험이나 주차 위치를 신중히 보는 편인데 우리 가족은 그런 걸 그냥 ‘감’으로 처리한다. “길은 감으로도 돼”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나는 이미 이 날이 길어질 거란 걸 직감했다. 아빠는 차에서 내비를 켜더니 목적지를 누르면서 “여기 말고 저기… 아, 맞다 그 가게”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그 순간 내 차에 들어간 누적된 경로 기록이 괜히 신경 쓰여서 괜히 심장이 두근거렸다.
점심쯤엔 더 이상해졌다. 나는 집에서 점심 준비하다가 문득 ‘주차 위치’가 궁금해졌다. 평소엔 내가 세팅해둔 자리가 있는데, 그걸 누가 알아서 맞춰주겠냐고. 그래서 조심스럽게 전화하려는데, 전화가 먼저 왔다. 엄마였다. “아들아, 지금 네 차에 있는 방향제… 향이 너무 강한 거 아니야?” 그 말에 웃음이 나왔다. 내 차에 향이 강한 건 맞는데, 그걸 가족이 타고 오자마자 ‘네가 사온 거잖아’라고 지적하는 게 너무 현실적이어서였다.
그런데 진짜 웃긴 건, 그 다음이었다. 엄마는 “근데 향이 강하긴 한데… 사람이 있으면 또 괜찮더라”라고 말을 바꾸더니, 갑자기 “아빠가 너한테 말 안 한 게 있는데”라고 전제를 깔았다. 나는 “뭔데요”라고 물었고, 엄마는 뜸을 들였다. “아빠가 미리 워셔액 좀 보충해뒀대. 네가 늘 ‘없으면 바로 넣어’라고 하잖아. 그래서 혹시 몰라서.” 그 순간 나는 하늘을 쳐다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워셔액은 ‘필요할 때’ 넣는 거지, ‘필요가 없는데도’ 넣는 건 관리가 아니라 예능이잖아.
조금 지나서 아빠가 직접 통화에 들어왔다. “야, 나 차 잘 몰았지? 주차도 깔끔하게 했어.” 나는 “깔끔하게 했다는 기준이 뭐예요?”라고 묻자, 아빠는 웃으며 “너 평소에 하는 방식대로 했지. 근데 너 그거, 브레이크가 좀 민감한 것 같지 않냐?”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황당해서 “민감한 게 아니라, 사람이 조금만 급하게 하면 그렇게 느껴지는 거예요”라고 설명하려다 말았다. 설명을 시작하면 끝이 없을 것 같았다. 가족은 설명을 들을 때가 아니라, 자기 확신으로 기록을 남길 때 최고의 속도로 움직인다.
해가 지고 나서 차가 돌아왔다. 주차장에 차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는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데 내 차가 돌아온 상태가… 놀랍게도 멀쩡했다. 겉보기엔 깔끔했고, 내부도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다만 계기판 아래 쪽에 종이 한 장이 끼워져 있었는데, 엄마가 적어둔 메모였다. “차가 잘 달려서 기분 좋았어. 근데 다음엔 이 향 좀 약하게 하자.” 나는 웃음을 참고 메모를 읽었다. 내 차를 빌려 갔으면 적어도 ‘고맙다’나 ‘다녀올게’가 먼저일 텐데, 향 얘기가 1순위였다.
그날 밤, 나는 결국 가족 회의(?)를 열었다. “차는 빌려주는 게 아니라 쓰는 거예요. 쓰려면 최소한 내비 목적지랑 주차 위치는 알려줘야죠.” 엄마는 “알려도 네가 잔소리할까 봐”라고 말했고, 아빠는 “알려주면 네가 갑자기 튀어나올 것 같아서”라고 말했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게 났다. 다음부터는 차를 누가 가져가도 되는데, 대신 메모에 ‘향은 평가하지 않는다’를 꼭 적기로 했다. 가족은 웃기게도 규칙을 만들면 그때부터 잘 지키더라. 그리고 그 규칙 덕분에 나는 오늘도 차에서 향이 몇 퍼센트인지 은근히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