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보내준 과일 상자에 편지가…
부모님이 보내준 과일 상자를 받았는데, 상자 옆면에 작은 글씨로 “열기 전에 꼭 숨 한번 쉬고 읽어주세요”라고 적혀 있더라. 순간부터 뭔가 큰일 나는 줄 알았지. 나는 택배 뜯는 것보다 가족이 써주는 안내문이 더 무서운 사람이다.
상자 뚜껑을 열자마자 복숭아, 사과, 배가 가지런히 들어있었고, 그 사이에 종이 한 장이 끼워져 있었어. 종이는 완전 편지지 느낌이라기보다, 부모님이 급하게 메모했다가 나중에 “이건 꼭 붙여야 돼” 하고 다시 적은 그런 스타일이었어. 위에 굵게: “딸/아들아, 이 과일은 네 마음이랑 같이 먹으라고 보낸다.” 라고 쓰여 있었음.
솔직히 과일 선물은 좋은데, 저 한 문장이 이상하게 마음을 찌르더라. 나는 그 문장을 읽는 동안 배가 덜컥 떨어지는 기분이었고, 바로 다음 줄을 보기 전에 괜히 목을 한 번 가다듬었어. 다음 문장은 더 구체적이었거든. “복숭아는 미소 짓고 먹고, 사과는 씁쓸한 생각을 껍질째 벗기고, 배는 목이 편해지는 날에 반만 먹어라.”
“반만 먹어라”에서 내가 멈췄지. 배는 보통 한 박스 다 먹고 나면 내 몸도 따라가는 느낌이라, 부모님이 “반만”이라고 말하면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잖아. 그래서 편지를 한 줄씩 읽는데, 중간중간 과일 이름 옆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는데 그 동그라미가 너무 예쁘게 쳐져 있어서 더 웃겼다. 왜냐면 부모님 동그라미는 평소에 거의 “대충 표시” 모드인데, 오늘은 뭔가 성실함이 묻어 있었거든.
나는 ‘설마 건강 검진 결과가 또…’ 싶어서 속으로 비상벨을 울렸는데, 편지는 생각보다 귀엽게 흘러가더라. “요즘 너 밥은 제대로 먹고 있지? 과일은 위에 부담이 덜하니까 오늘은 꼭 하나, 내일은 또 하나. 대신 과일은 ‘너를 응원하는 간식’이야. 반대로 너무 걱정하면 너만 손해니까, 걱정은 딴 데다 두고 와라.” 이런 말이 적혀 있는데, 이게 편지인지 타임캡슐인지 구분이 안 됐음.
근데 진짜 킬포인트는 마지막에 있었어. 부모님이 과일 상자에 ‘치트키’를 넣어두신 거야. 종이 맨 아래쪽에 아주 조그맣게 “이 편지 읽고도 마음이 무거우면, 배를 씹다가 껍질에서 ‘아’ 소리 한 번 내고 삼켜라. 그럼 억울함이 줄어든다.”라고 적혀 있더라. 어… 이건 과학인지, 아니면 부모님 특유의 민간요법인지 모르겠는데, 일단 읽는 순간 웃음이 올라오려고 하다가 멈췄어.
왜냐면 나, 진짜로 그럴 것 같았거든. 나는 편지를 읽고 바로 배를 하나 꺼내 씻었고, 한입 베어 물었는데, 솔직히 목이 조금 덜컥해지는 느낌이 들었어. 그래서 어차피 적혀 있으니까… 하면서 마음속으로 “아”를 준비하는데, 이게 웃긴 게, 우리 집에서는 아마도 내가 ‘아’ 소리를 내면 엄마가 바로 알아볼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 아, 내가 지금 엄마의 ‘음성 감지’ 시스템에 걸리는 건가 싶더라.
그래서 결국 아주 작게 “아” 비슷하게 내고 삼켰거든. 그 순간 진짜로 어깨가 내려가더라. 물론 과일이 마법을 부린 건 아니고, 내가 스스로한테 허락한 느낌이랄까. 그리고 편지 옆에 종이 테이프가 한 줄 붙어 있었는데, 그 아래에 또 짧게 “농담이고. 근데 너 웃는 얼굴 보고 싶어.”라고 적혀 있었어. 이걸 보고 나니까 갑자기 세상이 좀 따뜻해지더라. 부모님은 대단한 말로 사랑을 증명하는 대신, 생활 속에서 웃기게 증명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새삼 느꼈고.
그 뒤로 나는 과일을 그냥 먹는 게 아니라, 편지 내용을 순서대로 따라 하게 됐어. 복숭아 먹을 때는 억지로라도 미소를 짓고, 사과는 껍질 벗기면서 “오늘은 괜찮다” 한 줄 적어두고, 배는 목 편한 날 반만 먹고 나머지는 내일로 미루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부모님이 ‘반만’이라고 말할 때는 실제로 반만 먹어도 된다는 데서 인생의 교훈을 얻었다는 거야. 과일 상자 열었다가 편지 한 장으로 하루가 정리되는 게, 이게 사람 사는 맛 아닌가 싶다. 다음 택배도 또 올까 기대하면서도, 혹시 또 “숨 한번 쉬고 읽어주세요”가 적혀 있으면… 나는 그때도 먼저 웃고 시작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