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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가전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

2026-04-11 16:29:12 조회 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중고가전에서 처음 낮은 목소리가 들렸을 때, 솔직히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오래된 TV를 사서 집 거실에 놓으니 며칠 후부터 뭔가 이상했다. 저녁에 혼자 있을 때 가끔 아주 작은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거다. 처음엔 외부 소리려니 하고 무시했는데, 점점 그 목소리가 분명 TV 안에서 나는 것 같았다.

특히 밤 11시쯤, 조용한 집 안에선 TV 화면도 안 켜져 있는데 잡음 사이로 “도와줘…”라는 듯한 낮은 속삭임이 들렸다. 처음엔 착각인 줄 알았는데, 그 이후엔 목소리가 점점 더 자주 들리기 시작했다. 가끔은 분명히 ‘여기 있어’라는 말도 섞여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TV를 켜두면 이상한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화면은 꺼져 있는데 소리가 들리니, 누가 장난치는 거 아니냐는 생각도 했고, 중고물품 파는 곳에 전화를 걸어 상태를 물어봤지만 특별한 문제는 없다고 했다. 그런데 목소리는 점점 또렷해졌고, 어느 순간엔 “날 따라와”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일부러 그 TV 앞에서 녹음을 해봤는데, 녹음기 출력에는 아무 소리도 잡히지 않았다. 내가 느끼는 그 낮은 음성은 오직 내 귀에만 들리는 이상한 현상이었다.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더니 아무도 그런 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그때부터 이 집이 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며칠 뒤, 우연히 그 TV를 산 중고가전 판매자를 만날 기회가 생겼다. 그는 TV에 대해 별다른 문제는 없다고 했지만, 살짝 꺼림칙한 말을 꺼냈다. “사람들이 가끔 이상한 소리 들린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가게에도 그런 얘기 몇 번 있었거든요.” 그 말을 듣고 나는 더욱 깊은 불안에 빠졌다.

그 판매자가 말한 이상한 소리는, 예전에 그 TV가 어느 노부부 집에서 쓰이다가 중고로 나온 거라는 이야기와 연결됐다. 그 부부 중 한 분이 갑자기 실종됐고, TV는 그 뒤로 아무도 쓰지 않았다던가. 갑자기 그 낮은 목소리가 ‘도움’을 청하는 실종자의 잔상 같은 느낌도 들었다.

하루는 TV 주위에 무언가 남았다는 생각이 들어, 주변을 살피다 발견한 작은 종이조각을 TV 뒤에서 꺼냈다. 허름한 노트 한쪽에 ‘돌아와 줘’라는 문구가 손글씨로 적혀 있었다. 그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이건 단순한 가전제품이 아니라, 어쩌면 잊힌 누군가의 기억을 담은 그릇 같았다.

나는 TV를 다시 팔까도 생각했지만, 그 순간 또 뚜렷한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필요해”라는 말이었다. 그 말이 무서웠다기보단 묘하게 슬프고 애틋하게 느껴졌다. 멈출 수 없는 이상한 감정에 휘말려, 나는 그 TV를 끌어안고 앉아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자고 일어나서도 그 낮은 목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린다. 누군가의 사연이 이렇게 가전제품 속에 남아 움직인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분명한 건 그 TV는 지금도 집 안 한 켠에서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도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하겠지만, 나는 이제 그 소리를 벗어날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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