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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그거 필요해?’ 하며 가져온 물건

2026-10-17 00:41:13 조회 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형이 오늘도 “야, 이거 필요해?” 하면서 뭔가를 봉지째로 들고 오더라. 표정은 뭐 대단한 걸 해결하러 온 사람 같았는데, 문제는 형이 들고 오는 물건은 거의 항상 ‘필요’라는 단어랑 거리가 먼 경우가 많다는 거야. 나는 일단 “필요하면 가져오지, 왜 질문부터 해”라고 했고, 형은 “어차피 너 쓸 거야”라고 말하면서 거실 한가운데에 툭 내려놨어.

그 순간부터 냄새가 확 올라오는데, 향이라기보단… ‘중고의 세계’ 같은 느낌이었어. 뭔가 포장지와 테이프가 엄청나게 감겨 있었고, 형은 마치 박스 언박싱 BJ라도 된 듯 “자, 봐봐. 이거 진짜야”라면서 포장을 풀기 시작했지. 나는 속으로 ‘설마 또 고장 난 거, 혹은 10년 묵은 고물?’ 이런 생각을 했는데, 형은 계속 포장을 풀면서 점점 자신 있어 했어.

포장이 다 풀리고 나온 건 전기 멀티탭이었는데, 나도 놀란 게 멀티탭 자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상태가 너무 특이했어. 겉에는 테이프가 여러 번 덧붙여져 있었고, 스티커가 붙어 있는데 그 스티커가 “작동 확인 완료” 같은 문구가 아니라, 뭔가 손글씨로 ‘급한 불 끄려고 썼음’ 이런 느낌이었거든. 형이 “이거 안전해. 내가 테스트했어”라고 하길래, 나는 “형아… 테스트가 ‘급한 불 끄려고’면 그게 테스트냐고”라고 말했어.

그런데 형이 또 한 번 “잠깐만, 이게 다가 아니야” 하면서 같은 봉지에서 추가로 뭔가를 꺼내. 이번엔 자전거 헬멧인데,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안쪽에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그 스티커가 너무 오래된 건지 색이 바래서 ‘대체 무슨 이벤트였지’ 싶더라. 나는 “이거 누가 썼던 거야?”라고 물었더니 형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나?”라고 답했는데, 형이 헬멧을 썼던 걸 본 적이 거의 없어서 더 의심스러웠어.

여기까지는 그냥 웃겼는데, 문제는 세 번째로 나온 물건이야. 형이 “마지막으로 이것도 같이 가져왔어” 하면서 꺼낸 건 공기청정기 필터였거든. 근데 그 필터가 포장도 없이, 비닐만 대충 감싸져 있었고, 먼지가 살짝 묻어 있는 게 보였어. 나는 “형… 공기청정기 필터는 먼지 묻으면 끝 아니야?”라고 했더니, 형이 엄청 진지하게 “먼지 묻은 건 원래 먼지 잡으려고 묻는 거야”라고 하더라. 그 말 듣자마자 내가 말문이 막혔지.

그래서 내가 “형, 혹시 이거 어디서 구한 거야?” 물었더니 형이 웃으면서 “어제 창고 정리하다가 나온 거”라고 했어. 창고라면 그럴 수 있지, 싶다가도 창고 정리에서 나온 물건이 왜 나한테 오냐고. 나는 “그럼 네가 써”라고 했더니 형이 또 “나는 이미 다른 걸로 바꿨잖아”라고 말하더라. 그 ‘다른 것’이 뭔지 물어보려 했는데, 형이 손사래 치면서 “아냐 아냐. 오늘은 너 필요할 것 같아서 들고 온 거야”라고 다시 강조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깨달은 게 있었어. 형이 ‘필요’라는 걸 정확히 어떤 의미로 쓰는지. 형은 필요를 ‘쓸 사람 있을 거 같은 물건’으로 정의하는 것 같더라. 그러니까 형 머릿속엔 “누군가는 이거 쓸 수 있지 않을까?”가 곧 “너 필요해”가 되는 거야. 그래서 나는 괜히 설득하려 하지 않고 그냥 멀티탭부터 냉정하게 살펴봤어. 테이프가 감긴 흔적과 케이블 손상 여부를 확인하려고 했는데, 형이 “자, 너 전문이잖아”라고 말하길래 더 황당했지.

결국 나는 타협을 제안했어. “형, 이건 내가 필요할 때 써줄게. 근데 먼저 조건이 있어.” 그러니까 형이 “뭔데?”라고 묻더라. 나는 “멀티탭은 새 거 사. 헬멧은 혹시 사이즈 안 맞으면 그냥 장식으로라도 두고, 필터는… 이건 냄새부터 좀 확인하자”라고 말했지. 형은 처음엔 투덜거렸는데, 내가 “너도 필요해서 들고 온 거면, 최소한 안전하게 주는 게 필요하지 않냐”라고 하니까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더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형이 한 마디를 했어. “야, 사실 이거 다 ‘그거 필요해?’라고 물어보면 너가 알아서 챙길 줄 알았어.” 그 말에 나는 진짜로 웃음이 터졌지. 내가 챙기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확인하는 사람이 될 줄은 형도 몰랐던 거 같아. 형은 결국 “알겠어, 내가 새 걸로 다시 가져올게”라고 하면서 돌아갔는데, 집에 남은 봉지는 이상하게도 뭔가 정리된 느낌이었어. 그렇게 오늘 저녁, 멀티탭은 새 걸 사러 같이 가기로 했고, 헬멧은 당분간 창고에서 대기, 필터는 냄새 테스트만 하고 끝냈거든. 형이 말한 ‘필요’는 결국 내 생활을 불편하게 만들기보단, 나를 한 번 더 안전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거지. 다음에 또 “그거 필요해?” 하고 들고 오면… 나도 그때는 당당하게 물어볼 거야. “형아, 이거 이번엔 진짜로 필요한 거야, 아니면 또 내가 확인해야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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