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 중 갑자기 ‘나 사진 찍어도 돼?’
데이트 중 갑자기 “나 사진 찍어도 돼?”를 묻는 순간, 저는 제 인생이 갑자기 예능 자막을 달고 흘러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날 분위기 딱 좋았거든요. 카페에서 서로 “여기 디저트 진짜 맛있다” 같은 소리 하면서 웃고 있는데, 상대가 갑자기 폰을 들어 올리더니 그 한 마디를 툭 던진 거예요.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저도 “응? 누구 사진?” 이러니까, 상대가 “나!”라고 대답하더라고요. 근데 그 표정이 진짜로 진지했어요. ‘나 지금 귀엽게 나와야 하는 사진을 남길 거야’ 같은 얼굴로, 마치 데이트 코스 전체가 촬영 스케줄인 것처럼요. 저는 “데이트 중인데 본인 찍는 건 괜찮지”라고 대답하려다 말했어요. 왜냐면 그 다음 질문이 더 무서웠거든요.
상대가 “찍어도 돼?” 뒤에 덧붙인 말이 “나 찍히는 거 말고, 내가 찍는 거”였어요. 그럼 상황 정리: 상대는 제 표정이나 분위기를 같이 담고 싶었던 게 아니라, 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방식으로 자기 셀카를 찍겠다는 거죠. 제가 알던 상식의 데이트는 “기분 좋다”에서 시작해서 “사진은 남기자”로 이어지는 건데, 얘는 “허락 먼저”로 시작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잠깐 멈칫했죠. “자유롭게 찍어도 되지 않나?”라고 했더니, 상대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자유롭게 찍기엔, 오빠 표정이 너무 좋을까 봐요”라고 말하는데… 그 말이 또 웃긴 게, 제가 방금까지 ‘표정이 좋다’는 평가를 받는 입장이라니요. 저는 순간 얼굴이 화끈해져서 “그럼 찍지 마?”라고 장난처럼 던졌는데, 상대는 진짜로 폰을 내리더라고요. 그때야 알았어요. 이 사람, 말장난이 아니라 신경을 엄청 쓰는 타입이구나.
그 뒤로는 데이트 내내 촬영이 진행됐습니다. 다만 완전 영화처럼요. 카페 조명 좋은 각도 앞에서는 “이 각도 괜찮아?” 같은 질문이 나오고, 길 가다가도 바람 불면 “오늘 머리 흐트러지는 거 찍어도 돼?”가 나오고, 그러다 제가 “너무 허락 구하지 말고 그냥 찍어”라고 하면 또 “그럼 오빠가 불편할까 봐요”라고 걱정해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불편한 게 아니라 너무 감동받을 뻔했어요. 그런데 감동이랑 웃음이 같이 와서… 제 표정이 계속 흔들렸습니다.
특히 제일 웃겼던 건 저도 모르게 ‘촬영 감독’이 된 순간이에요. 상대가 사진 찍는 동안 제가 자연스러운 표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면, 상대가 “오빠, 지금 너무 열심히 노력하는 얼굴이에요”라고 딱 잘라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그럼 그냥 가만히 있을게”라고 했더니, 이번엔 “그건 또 너무 가만히 있어요”라고 합니다. 결국 저는 사진 한 장 찍기 위해 체조하듯 포즈를 바꿔야 했고요. 처음엔 서로 마주 웃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상대가 “지금!” “오케이!” 같은 감독 멘트를 날리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날 사진을 다 찍고 집에 가는 길엔 분위기가 아주 조용해졌어요. 상대가 “이제 오빠 사진도 찍어도 돼?”라고 물었거든요. 저는 또 깜짝 놀라서 “나? 왜?” 했더니, “방금 오빠가 너무 잘 맞춰줘서요. 그런 게 사진에 남을 것 같아서요.” 이 말이 조금 과장된 것 같기도 한데, 이상하게 기분은 좋았습니다. 허락을 계속 구하던 이유가 결국 ‘상대가 불편할까 봐’였다는 걸, 그때야 제대로 이해했거든요.
집에 와서 보니까 사진이 생각보다 괜찮더라고요. 제가 굳이 연기한 느낌이 아니라, 진짜로 데이트 분위기 안에서 자연스럽게 웃는 컷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마지막 사진 한 장이 웃겼습니다. 상대가 저를 찍고 나서 제 표정을 캡처한 건지, 아니면 제가 표정 관리하다가 타이밍 놓친 건지 모르겠는데, 제 얼굴이 딱 “아 지금 뭐 하라는 거지?”라는 표정이었거든요. 그 사진 아래에 상대가 캡션을 달아놨어요. ‘허락 구하는 데이트’. 진짜 그날 우리는 사진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의 구도가 아니라, 허락과 배려의 게임을 한 셈이었죠.
그래서 지금도 가끔 데이트 약속 잡으면 먼저 물어봅니다. “나 사진 찍어도 돼?” 그 말이 들리면 저는 이미 웃음이 나요. 이유는 간단해요. 그날 이후로 저는 알게 됐거든요. 사진은 결국 남기는 게 아니라, 서로 불편하지 않게 시간을 정리하는 방식이라는 걸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다음 데이트 때는 제가 먼저 ‘허락’이 아니라 ‘선제’로 웃는 표정을 연구하게 될 것 같아요. 허락받는 사람이 아니라, 허락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