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하면서 생긴 ‘물컵 분실’ 사건
제 자취 생활 시작하고 첫 3주는 “나도 이제 어른이지” 모드였어요. 그런데 어른 모드의 상징이 뭔지 아세요? 바로 물컵이요. 물 마실 때마다 “오늘도 내 생활은 정상” 이러면서 컵을 딱 꺼내 쓰면 뿌듯하잖아요. 문제는 그 뿌듯함이 어느 날 한 번에 무너졌다는 겁니다.
어느 날 아침, 물 한 잔 하려고 컵을 찾는데… 안 보이는 거예요. 분명 전날 저녁에 싱크대 옆에 뒀거든요. 아니, “뒀거든요”가 아니라 “분명히 뒀을 거야”라고 마음속에서 재판을 했어요. 설거지 끝내고 건조대에 올려놨나? 냉장고 위에 올려놨나? 심지어 이불 속에 넣어둔 건가? 아무튼 사방을 뒤졌는데 컵이 없습니다.
처음엔 제가 잠깐 깜빡했다고 생각했어요. 자취하면 이런 거 흔하잖아요. 양말은 사라지고, 티백은 어느 순간 늘어나고, 휴지는 왜인지 옷장 뒤에서 발견되고요. 그런데 이번 건은 “물컵”이었습니다. 그것도 제일 자주 쓰는, 가장 익숙한 그 컵이요. 물컵이 사라진 순간부터 제 뇌는 논리 대신 공포 영화를 찍더라고요. 우리 집이 유령의 집이었나? 이런 상상부터 했습니다.
그래서 바로 비상 대책을 세웠죠. 비슷한 컵을 꺼내 쓰려고 했는데, 문제는 집에 컵이 단 하나 더 있다는 거예요. 그것도 약간 얇고 모양이 달라서 물맛이 다른 느낌이랄까요. 사람은 익숙한 감각에 의존하는 동물이니까요. 첫 모금 마시고 나서 “이 컵은… 날 배신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결국 저는 물을 더 마시기 전에 그 잃어버린 컵을 찾아야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날 하루는 컵을 찾는 탐정 모드로 돌아갔습니다. 싱크대 아래장, 건조대, 식탁 밑, 창가, 심지어 쓰레기봉투 옆까지 확인했어요. 확인하다 보니까 집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더라고요. 자취방이 원래 이렇게 복잡했나? 아니면 내가 그동안 컵을 너무 대충 대했나? 그러다 문득, 제가 전날 설거지를 하면서 “아, 이 컵은 그냥 둬도 되겠지”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을 떠올렸습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전날 루트를 떠올렸어요. 설거지하고 나서 건조대에 올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잠깐 다른 일을 했던 것 같아요. 그때 뭐 했더라… 유튜브? 아니, 라면? 혹시 물컵을 들고 있다가 라면에 물 붓고 정신이 팔려서 다른 데 놓았나? 이쯤 되니까 컵이 사라진 게 아니라, 제 생활 루트 어딘가에 “임시 보관”을 해둔 상태인 것 같았습니다. 근데 임시 보관이라는 건 늘 영원해지더라구요.
결국 저는 마지막으로 수납공간을 뒤졌어요. 자취방엔 “쓸 일 있을 때 쓰자”는 물건들이 한두 개가 아니라 여러 개 쌓이잖아요. 저는 그 사이에서 파란색 세제통 옆을 살짝 밀었는데, 거기서 딱 소리가 났어요. “툭.” 물컵이 바닥에 굴러서 벽에 닿는 소리 같은. 그 순간 심장이 내려앉았습니다. 컵이 어디 있냐고요? 식탁 아래였어요. 정확히는 식탁 의자 다리 사이, 제가 바닥을 닦으려고 잠깐 밀어뒀던 걸 다시 제자리로 못 돌린 그 자리요.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컵은 있었는데, 컵 안에 물때가 아주 살짝 있었어요. 그러니까… 전날 제가 컵을 쓰다가 설거지를 깜빡하고 내려놓은 뒤, 식탁을 살짝 밀면서 그 자리에 끼워버린 거죠. 그러면 “어디 갔지?”가 아니라 “어디로 갔지?”가 답이 됩니다. 유령이 아니라 저요. 내가 내 컵을 납치했다. 결론은 딱 그거였습니다.
그 후로 저는 물컵을 찾았다는 기쁨보다, 앞으로 또 무슨 물건이 이렇게 이동할지 걱정이 됐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이후로는 컵이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대신 다른 게 생겼습니다. 이제는 컵을 찾을 때가 아니라 “혹시 내가 또 어디에 임시로 넣어둘까”를 먼저 생각하게 된 거죠. 자취는 물건을 잃는 게임이 아니라, 내가 어떤 습관으로 잃게 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더라고요.
그리고 지금도 가끔 물컵을 꺼내 마실 때마다 한 번은 식탁 아래를 눈으로 확인합니다. 누가 압니까, 다음엔 물컵이 아니라 제가 식탁 아래로 들어갈지. 그게 제 자취 생활의 마지막 안전장치예요. 컵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문제는 제가 “제자리”라는 말을 얼마나 믿어도 되는 사람인지… 그걸 매번 테스트하게 된다는 거죠. 아무튼 물컵 분실 사건 이후로 저는 이제 물 한 잔 마실 때마다, 제 생활을 한 모금씩 되돌려놓는 느낌이 들어요. 피식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정도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