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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회식 때 ‘2차는 무조건’ 말의 결말

2026-10-20 20:41:16 조회 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팀 회식 때, 내가 제일 자신 있게 한 말이 “2차는 무조건 가야죠”였거든. 그 한 문장이 이상하게도 회의실에서 발표하듯이 퍼져버렸고, 다들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어. 문제는 내가 그때 분위기만 보고 말한 거지, 결말까지 생각을 안 했다는 거지.

처음엔 그냥 평범한 회식이었어. 고기 굽고, 서로 요즘 뭐하냐고 묻고, 과장님은 “다음 분기 계획은…” 같은 말을 숟가락 들고도 하시고. 그런데 식당 조명이 살짝만 어두워지니까, 우리 팀 분위기가 갑자기 영화처럼 바뀌더라. 누가 “오늘은 끝나면 아쉽지 않냐” 이러고, 옆자리 누가 “2차 안 가면 우리 팀 사기 떨어진다” 같은 말을 꺼냈지.

그 순간 내가 그냥 웃으면서 “맞아요. 2차는 무조건!” 하고 한 번 더 힘을 줬어. 말투도 되게 확신에 찬 것처럼 나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재앙의 시작이었어. 내 말이 신호탄처럼 번졌는지, 다들 “오케이 오케이” 하면서 자리 정리 속도가 갑자기 빨라졌거든. 마치 누가 이미 2차 장소를 예약해둔 것처럼.

그래도 나는 마음이 편했어. “대충 근처로 가겠지, 뭐 그냥 맥주 한 잔 정도겠지” 이런 생각. 그런데 식사 마무리 단계에서부터 이상한 조짐이 보이더라. 팀장님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더니, “2차는 무조건이니까, 이번엔 분위기 좋은 데로 가자”라고 말하시는 거야. 여기서부터 게임이 달라졌어. 무조건이라는 말이 ‘가벼운 농담’에서 ‘팀의 공식 방침’으로 바뀐 느낌.

2차 장소 후보를 묻는 순간, 사람들이 하나둘씩 “제가 알아봤는데요”를 꺼내기 시작했어. 그런데 알고 보니 다들 “아는 곳”이란 말을 너무 넓게 쓰더라. 한 명은 “근처에 바 있긴 한데, 분위기는… 음, 조용한 편”이라고 하고, 다른 한 명은 “노래방도 있죠. 근데 예약해야 할 수도 있어요”라고 하고. 가장 무서웠던 건, 누가 “2차는 무조건”이라고 말한 사람이 나였다는 걸 서로 확인사살하듯 떠들었다는 거야. 나를 근거로 삼아 결정을 내리더라고.

결국 우리는 택시를 몇 대로 나눠 타고 이동했어. 이동 중에 팀장님이 자꾸 “2차는 어디까지 가는 거야?”라고 묻는 거 있지. 다들 “보통은 한두 시간?” “아니 두세 잔 정도요!” 이런 식으로 대답하는데, 이상하게도 말이 점점 커져. 내가 “2차는 무조건”이라고 했으니, 이제는 2차가 ‘하루 일정의 본 무대’가 된 거야. 심지어 어떤 후배는 “2차 다음 3차도…?” 같은 얘기를 슬쩍 던지길래, 나는 그 자리에서 얼굴이 굳는 걸 느꼈지.

도착해서 보니까, 우리가 간 곳은 그냥 술집이라기보단 ‘단체 회식용 세팅이 잘된 곳’이더라. 인테리어는 멋있고, 직원분도 친절한데, 문제는 가격표가 친절한 만큼 당당하다는 거. 메뉴판 보자마자 다들 속도 줄이더니, 각자 “오늘은 그냥 먹고 싶은 거…” 하면서도 계산 앞에서는 눈치를 보더라. 그때 내가 또 실수했어. 분위기 좋으니까 “자, 오늘은 다들 한 번씩 시켜요. 2차는 무조건이잖아요!”라고 말했는데, 그 말이 다시 공문처럼 퍼졌지.

결국 술값이 생각보다 빨리 올라가고, 서비스로 나온 안주도 계속 ‘추가’를 부르는 스타일이었어. 누가 “이거 맛있네?” 하면 바로 다른 사람이 “그럼 이거랑 같이 하나 더!” 같은 리액션을 하고, 그게 또 누군가의 “그럼 사장님 다음엔 서비스로…” 같은 농담으로 이어지고. 나는 그때 깨달았어. 내가 던진 “무조건”이 누군가의 지갑을 자동으로 열어버리는 단어였다는 걸. 웃기지만, 진짜로 체감이 그랬어.

마지막에 정산하면서 팀장님이 한숨을 쉬더라. “어휴, 오늘은… 누가 ‘무조건’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네.” 이 말에 다들 동시에 나를 쳐다봤고, 나는 그 시선 속에서 눈을 깜빡이는 것만으로도 죄가 늘어나는 느낌이었어. 그래도 분위기 깨지긴 싫어서 “제가요, 맞아요. 근데 취지는 좋지 않았나요?”라고 말했더니, 팀장님이 웃으면서 “취지는 좋았는데, 우리 팀이 그 취지를 너무 현실적으로 받아들였지.”라고 하시더라.

집에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다들 잠잠해졌어. 다들 어딘가에 적힌 예산표를 떠올리는 표정이었거든. 그런데도 맨 끝에 앉은 후배가 갑자기 조용히 한마디 했어. “형, 다음 회식 때도 ‘무조건’은 좀… 문장 앞에 ‘적당히’ 붙여서 말해주면 안 돼요?” 그 말 듣고 나 혼자 빵 터졌고, 다음 날 아침에 팀 단톡방에 올라온 캡처 한 장이 더 웃겼어. 회식 당일 우리 팀장님이 메모해둔 듯한 문장: ‘2차는 무조건이지만, 무조건은 본인이 책임진다.’

그날 이후로 나는 회식에서 절대 확신에 찬 단어를 던지지 않게 됐어. “가볼까요?” 정도는 말할 수 있어도, “무조건” 같은 단어는 그냥 위험한 버튼이더라고. 그런데도 사람들 입에서는 가끔 그날의 문장이 흘러나와. 누가 맥주 한 잔 더 시키려다 말하면, 누군가가 슬쩍 “2차는…?” 하고 웃어버리는 거야. 그러면 다들 한 번 더 웃고, 그래도 결국 시키긴 하더라. 웃긴 건, 우리가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 버튼을 누른다는 사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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