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맞았는데 수저가 없는 비극
회사 점심시간에 늘 그렇듯이 “오늘은 내가 먼저 줄 서겠다”는 각오로 식당 앞에 섰는데, 그날따라 배식판이 너무 빨리 넘어가는 바람에 나만 살짝 멍해졌다. 메뉴는 내가 고른 게 맞았다. 근데 정작 내 손에는 음식이 들려 있는데, 이상하게도 수저가 없었다.
처음엔 “아, 나중에 챙겨주겠지” 싶어서 트레이를 들고 테이블로 걸어갔다. 그런데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수저통을 열고 수저를 툭 꺼내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그 소리가 내 트레이 쪽으로 들려오는 것 같아서 괜히 더 불안해졌다. 수저가 왜 내 쪽으로는 안 왔지?
그때까지만 해도 난 낙관적이었다. 어쩌면 수저는 따로 비치되어 있나 싶어서 식당 한 바퀴를 훑었다. 수저통이 있긴 하더라. 딱 하나. 근데 문제는 그 수저통이 “이미 먹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는 거다. 너~무 자연스럽게 누군가의 손이 그 수저통을 잡고 있어서, 내가 손을 뻗으면 그 사람의 표정이 먼저 바뀔 것 같은 분위기였음.
그래서 나는 선택을 했다. “일단 손으로 먹어볼까?”라는, 정말로 인간이 본능적으로 내리는 최악의 실험을. 국물은 괜찮을지도 몰라. 근데 문제는 오늘 메뉴가 국이 아니라 볶음류였고, 소스는 손에 묻으면 끝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괜히 냅킨만 더 빨리 꺼내 들고, 입은 바빠지는데 손은 더 바빠지는 이상한 상황이 됐다.
잠깐만, 생각해보면 이건 단순한 수저 분실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 실험이었다. 나는 내 옆자리 동료에게 “혹시 수저 추가로…”라고 말할 타이밍을 잡았는데, 그 동료는 마치 내 질문을 이미 예견한 사람처럼 “난 비치된 거 가져다 써서 괜찮아”라는 표정을 짓더라. 내가 그 표정을 이해 못하면 더 큰일이 나는 것 같아서, 결국 나는 입을 다물었다. 수저가 없는 사람은 말도 적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는 건가?
계속 손으로 집어먹는 건 점점 한계가 왔다. 특히 면처럼 휘감기는 재료가 나오자, 손가락이 소스에 미끄러워서 결국 젓가락처럼 집는 게 아니라, 그냥 “미끄럼틀 타는 것”처럼 보이게 됐다. 옆에서 누군가 나를 한 번 쳐다봤는데, 그 시선이 너무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더 무서운 건지 모르겠다.
나는 결국 직원분께 가서 물어보기로 했다. 근데 직원분이 주방 쪽에서 물건을 옮기고 있어서, 다가가면 “아, 또 이 사람…” 하는 분위기가 날 것 같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나는 트레이를 들고 최대한 무표정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혹시… 수저가 누락됐는데요”라고 말했다. 그 순간 직원분이 내 트레이를 보시더니 “아, 이건 따로 나간 거예요” 하며 수저를 즉시 가져다주셨다.
문제는 그 한마디였다. 따로 나갔다고? 그러면 내 음식만 먼저 도착한 거였어? 나는 그제야 이해했다. 내 트레이가 처음 나왔을 때 누군가가 “수저는 저쪽!”이라고 외쳤는데, 나는 그 말을 “어, 저쪽에 줄 서라는 뜻인가?”로 받아들였던 거다. 그러니까 수저는 내 앞에 있었던 게 아니라, 내 앞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거였고… 나는 그 예정된 것들을 계속 놓친 거다. 예정이 틀어진 건가, 내가 틀어진 건가. 참으로 철학적인 점심이었다.
수저를 받은 순간 난 엄청난 해방감을 느꼈다. 기분이 뭐랄까, 게임에서 아이템을 획득한 느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뒤로는 더 자주 주변을 보게 됐다. 다른 사람들은 다 수저가 있는데, 나는 방금 전에 수저 없는 시간을 지나왔다. 그 시간 동안 내가 얼마나 이상한 얼굴로 손으로 먹었을지 스스로 상상도 됐다. 결국 나는 밥을 다 먹고도 한동안 테이블에서 가만히 앉아 있었고, 동료가 “무슨 생각해요?”라고 묻자 “아… 오늘은 손으로 먹는 사람을 관찰했어요”라고 답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점심을 먹을 때마다 수저를 먼저 확인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수저통을 열 때, 나는 괜히 마음속으로 체크한다. “지금 내 수저는 어디쯤 있지?” 예전엔 ‘음식은 받았으니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음식보다 수저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수저가 없으면 점심은 그냥 사건이 되거든. 무엇보다… 다음엔 절대 내 수저가 따로 나가지 않게 하겠다. 내 인생도, 내 수저도, 한 번에 도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