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에 오신 엄마가 한마디 한 다음
자취방에 오신 엄마가 한마디 한 다음, 그 한마디가 그렇게 오래 남을 줄은 몰랐어요. 집 주소 알려드린 적도 없는데 엄마는 왜인지 “아, 여기겠구나” 하고 문 앞에서부터 딱 맞춰 들어오셨어요. 저는 현관문 열고 “엄마 오셨어요?” 했는데, 엄마는 신발도 대충 놓고 들어오자마자 가만히 둘러보더니 한 마디 하더라고요.
“너, 여긴 원룸이 아니라 대기실 같다.”
순간 말이 안 나왔어요. 원룸인데 대기실이라니. 저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되물으려 했는데 엄마는 이미 거실 겸 주방을 걸으며 설명을 이어가셨어요. “여기서 뭘 기다리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사람 들어오면 ‘곧 나가겠지’ 싶은 느낌이 있잖아.” 그게 또 그렇게 말이 되는 게, 저도 사실 가방이며 옷이며 필요한 것만 대충 대충 두고 살았거든요.
엄마는 소파도 없는 자리에서 제 바닥을 손바닥으로 툭툭 쳤는데, 소리부터가 “여기엔 사람이 오래 머물기보단 들렀다 가는 곳” 같대요. 저는 “그냥 좁아서요”라고 변명하려다 입을 다물었어요. 좁은 건 맞는데, 엄마가 본 건 공간 크기가 아니라 제 생활 방식이었던 거죠.
그리고 엄마는 냉장고 문을 열어보더니 더 단호해졌어요. “아, 여기엔 ‘내일 먹을 것’이 없네. 다 오늘 먹는 것만 있지.” 냉장고 안은 솔직히 말하면 편의점 도시락, 남은 반찬 약간, 그리고 유통기한이 애매한 김치뿐이었어요. 저는 “요즘 바빠서…”라고 했는데 엄마는 “바쁘면 냉장고가 비어야지, 바빠도 집은 비면 안 돼”라고 말하더라고요. 그 말이 좀 무서웠어요. 왜냐면 엄마 말이 맞는 것 같아서요.
그 다음엔 세탁실에서 나온 빨래를 보고는 또 한마디. “너 옷을 삶는 게 아니라, 그냥 ‘쌓아두는 것’만 하고 있네.” 저는 속으로 ‘이건 세탁 귀찮아서가 아니라… 계획을 세우는 중이야’라고 변명할 타이밍을 찾고 있었는데 엄마가 먼저 웃으며 말했어요. “계획 세우는 사람은 빨래를 한 번이라도 정리해. 빨래가 계속 늘면 그건 계획이 아니라 중력이지.”
그 말을 듣고 저도 웃긴데, 동시에 기분이 묘하게 이상했어요. 웃기긴 웃긴데… 내가 지금까지 나를 얼마나 대충 다뤘는지 얼굴이 화끈해졌거든요. 엄마는 설거지도 못한 컵을 보더니 “이건 네가 게으른 게 아니라, 집이 너한테 힘을 주고 있지 않은 거야”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부엌에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위치를 정해주더라고요. 수저는 서랍 맨 위, 컵은 건조대 말고 바로 선반, 양념은 자주 쓰는 것만 앞으로. 저도 따라 하긴 했는데, 엄마는 말투가 딱 교육자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엄마가 방 안쪽으로 들어가서 제 이불을 툭 들어 올렸는데, 그때 제가 제일 놀랐어요. “너, 이불 속에 머리카락이 왜 이렇게 많아?”라고 물었거든요. 저는 “환절기라… 그런가요?”라고 말했는데 엄마는 진지하게 “머리카락은 계절 탓이 아니라 관리 탓이지”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빗자루를 가져와서 바닥을 쓱쓱 쓸고, 먼지 모으는 걸 보더니 “이건 네가 게으른 증거라기보다, 집이 너를 잊게 만드는 먼지야”라고 또 말했어요. 솔직히 그 말은 제가 가장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움직이긴 했어요.
그날 엄마는 한 3시간 정도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저는 그 시간 동안 기분이 들쭉날쭉했어요. 웃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부끄러워지고, 부끄러워지다가도 ‘내가 이렇게 살았구나’ 하고 깨닫고, 깨닫고 나면 또 갑자기 마음이 편해졌어요. 청소라는 게 대단한 의지가 있어야 되는 게 아니라, 그냥 누가 한 번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어”라는 기준점을 잡아주면 시작이 된다는 걸 엄마가 보여준 거였죠.
엄마가 나가기 직전에 현관 앞에서 다시 한마디 했어요. “원룸이 대기실 같았던 건, 네가 계속 퇴근하고도 다음 날을 기다렸기 때문이야.” 저는 “그럼 지금은요?” 하고 물었더니 엄마는 잠깐 생각하다가 “지금은… 그냥 살고 있는 공간 정도는 됐네.”라고 말했어요.
문 닫히는 소리가 나고 나서 저는 그제야 느꼈어요. 엄마가 한 말은 뭐 거창한 충고가 아니라, 제가 제 삶을 얼마나 ‘미뤄두고 있는지’를 한 문장으로 딱 찍어준 거였다는 거. 그날 이후로 저는 빨래는 늦어도 같은 날 넣고, 설거지는 쌓이지 않게 하려고 스스로 타협점을 찾게 됐어요. 아직도 완벽하진 않지만, 적어도 대기실처럼 느껴지진 않아요. 가끔 엄마 생각이 나면 싱크대에 컵 하나가 덩그러니 있을 때도, 제가 스스로 “대기실 모드 그만” 하고 바로 가져오게 되더라고요. 결국 엄마의 한마디는, 청소 스위치를 켜주는 타이머 같은 거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