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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대신 받아준 택배의 정체

2026-10-24 15:41:11 조회 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친구가 대신 받아준 택배의 정체는, 솔직히 말해서 내 인생에서 가장 황당한 “정체불명 물건” 사건이었다. 그날도 평소처럼 집에 혼자 있다가, 초인종 소리 대신 휴대폰 알림이 먼저 울렸다. ‘부재중이라 보관 중입니다’ 같은 문구 말고, 친구가 카톡으로 먼저 “나 대신 받아줄까?”라고 메시지를 보낸 거다.

나는 그때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다. 요즘은 택배 오면 그냥 현관 앞에 툭 두고 가는 경우도 많고, 나도 그동안 그렇게 살았다. 그런데 해당 택배는 배송사 알림이 유난히 길었고, 무게가 꽤 나가 보이는 타입이라 신경이 쓰이긴 했다. 그래서 “아 맞다. 내일 와서 문 앞에 두지 말고, 가능하면 받아줘”라고 했는데, 친구가 “오케이” 하고 끝내더라.

다음 날, 친구가 무심한 표정으로 내 집 앞에 택배 박스를 들고 왔다. 문제는 박스가 너무 멀쩡하다는 거였다. 보통은 택배가 오면 한 번쯤 구겨져 있거나 테이프가 여기저기 붙어 있거나 하는데, 이건 마치 누가 정성껏 포장해 둔 것처럼 단정했다. 친구가 “야, 너 이거 받은 거 맞지?”라고 물었고, 나는 “맞지. 나 안 받는다고 했잖아”라고 답했다.

친구는 상자 위에 적힌 배송 메모 같은 걸 슬쩍 보더니, 갑자기 웃음을 참는 표정이 됐다. “근데 이거… 대체 뭐야?”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친구가 손잡이를 잡고 탁탁 두드리더니 포장지 안쪽에서 뭔가 둔탁한 소리가 났다. 나도 순간 멈칫했다. 혹시 깨지는 물건이면 어쩌지, 아니면 위험한 거면 어쩌지, 그런 걱정이 스르륵 올라왔거든.

그래도 난 최대한 태연한 척하며 “상자 안에 뭐 들어있는데?”라고 물었다. 친구는 대답 대신 박스를 더 가까이 가져오더니, 테이프를 조심스럽게 뜯는 시늉만 했다. 그러다 “야, 근데 너 이거 주문한 거 맞냐?”를 또 물었다. 내가 “맞다니까. 난 그냥 앱에서 샀어”라고 말하자, 친구가 갑자기 한 문장으로 결론을 내렸다. “아니, 너 주문할 때… 배송 옵션을 잘못 눌렀을 가능성 99%다.”

그 말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결국 내가 직접 테이프를 뜯어 보기로 했다. 그런데 포장을 열자마자 제일 먼저 나온 건 뽁뽁이도 아닌, 얇고 반짝이는 비닐 커버였다. 그 안에서 무언가가 “반짝”하며 모습을 드러냈는데, 자세히 보기도 전에 친구가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그는 “야 이거… 너 집 인테리어 바꾸려는 거야?”라고 묻더니, 내 얼굴을 보고는 말을 바꿨다. “아니, 너 혹시… 세트로 맞춰서 산 거야?”

그때서야 내가 뭔지 정확히 알게 됐다. 택배 상자 안에는 작은 조립 키트가 들어 있었고, 그중에는 설명서와 함께 예상보다 디테일한 부품들이 가지런히 포장돼 있었다. 그리고 그 조립 키트가… 생각보다 훨씬 ‘취향’이 확실한 물건이었다. 나는 “이게 왜 택배로 오지?”라기보다, “내가 이걸 왜 샀지?” 쪽으로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분명 내가 주문할 때는 그냥 ‘재미있는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내가 알고 있는 ‘재미’와 다른 결의 재미였다.

친구는 웃음을 삼키느라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그는 설명서 표지를 대충 훑더니 “너, 이거 조립해서 뭐에 쓰는 건데? 이거 그냥 공예 아니고… 거의 ‘소품용’이잖아”라고 말하더라. 나는 “설명서만 보면 되지 뭐”라고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 말 하는 순간부터 이미 마음이 흔들렸다. 왜냐면 설명서를 펼치자마자, 너무나도 친절하게 적혀 있던 사용처가 내 생각보다 더 노골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친구가 계속해서 “근데 내가 왜 받았냐면”이라고 말문을 열더니, 자기 쪽 사연을 털어놨다. 어제 친구가 택배 기사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기사님이 “이거… 혹시 받는 분이 ㅇㅇ호 주인이 맞나요?” 하고 물었다고 한다. 친구가 “네, 주인이에요”라고 했더니 기사님이 “그러면 상자에 적힌 문구가 좀 민망한데, 괜찮으세요?”라고 다시 물었다는 거다. 친구는 그때 “뭐 민망한데요?”라고 물었고, 기사님이 상자에 적힌 라벨을 보여줬는데, 거기에 적힌 문구가 너무나도 엉뚱해서 친구가 당황했다고 한다.

결국 택배의 정체는 “조립 키트 소품” 그 자체도 있었지만, 동시에 ‘내 주문 내역이 내 생활과 너무 잘 맞지 않았던’ 사건이었다. 친구는 택배를 대신 받아주는 선의로 시작했는데, 그 선의가 내 하루를 한 번 크게 뒤집어놨다. 그래도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왜냐면 조립을 시작하자마자, 부품들이 내 손에 착 붙으면서 생각보다 금방 완성됐고, 완성된 결과물이… 친구가 보기엔 민망한데, 정작 나는 너무 웃겨서 계속 쳐다보게 되더라.

마지막으로 친구가 한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야, 너 다음에 또 이런 거 주문하면… 그냥 문 앞에 두지 말고, 무조건 나한테 맡겨. 내가 민망한 걸 같이 감당해줄 테니까.” 그 말 듣고 난 결국 웃어버렸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한 가지 다짐을 했다. 다음 주문할 땐 배송 옵션부터 제대로 확인하자—그리고 혹시라도 다시 ‘정체불명 택배’가 오면, 그 정체는 택배가 아니라 내 주문 버튼이었다는 걸… 또 잊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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