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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로 산 스탠드가 밤마다 깜빡

2026-10-24 20:41:10 조회 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중고로 산 스탠드가 밤마다 깜빡… 처음엔 “전구가 좀 약간 불량인가?” 싶었는데, 이게 하필 매일 같은 시간대에만 그러는 거예요. 회사 끝나고 집에 들어와 불 켜면, 거실 한가운데서 조명이 깜 하다가 멈칫하고, 그 다음엔 또 깜… 마치 집이 제 컨디션을 체크하는 것처럼요.

처음 구매할 때도 전등 갓이 살짝 스크래치 있길래 “오래 쓰던 거겠지” 하고 넘어갔거든요. 근데 깜빡이는 게 그냥 순간 정전 수준이 아니라, 약간의 리듬이 있어요. 한 번 깜빡이고, 2~3초 뜸 들이고, 또 한 번. 게다가 제가 밤에 공부하려고 책상 위에 스탠드 올리면 그때부터 더 적극적으로 활동합니다.

그래서 첫날은 전구만 의심했어요. 바로 근처 마트 가서 비슷한 스펙으로 새 전구 사 오고 갈아 끼웠는데… 결과는 똑같더라고요. 전구를 바꾸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스탠드는 “전구는 바뀌었지만 나는 그대로야” 이런 표정으로 깜빡이더군요. 진짜로 눈으로 욕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콘센트 문제를 봤어요. 멀티탭을 바꿔 끼워보고, 다른 방 콘센트에 꽂아보고, 심지어 연장선 위치도 바꿔봤는데도 동일했어요. 이쯤 되면 제 집이 아니라 스탠드 자체에 뭔가 타이머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밤 10시만 되면 폰 알람처럼 “자, 이제 시작이다” 하는 그 느낌이요.

그다음엔 스탠드 바디를 손으로 만져보기 시작했어요. 스위치를 누르면 켜지기는 하는데, 그 과정에서 손에 미세한 떨림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내부 접점이 헐거운 건가 싶어서 스탠드 밑부분을 살짝 흔들었더니, 깜빡임 강도가 잠깐 달라졌어요. 그런데 그뿐… 해결되진 않았고, 오히려 “흔들지 마” 하는 듯 더 자주 깜빡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인터넷에서 “스탠드 깜빡임 원인”을 찾아보는데, 글마다 결론이 비슷하더라고요. 접촉 불량, 드라이버(안정기) 문제, 전원 변동… 근데 제 스탠드는 LED인지 뭔지 애매한데, 겉으로는 멀쩡해요. 멀쩡한데 밤마다 분위기만 망치는 그 애매함이 너무 교묘합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괜히 겁이 나더라고요. 혹시 이 스탠드가 ‘정상 작동’이 아니라 ‘시연 모드’로 쓰고 있는 거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래서 친구한테 말했더니, “그거 버리는 게 맞지 않냐”는 말만 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이미 중고로 산 걸 버리면, 제 마음이 먼저 손해 보는 느낌이 있어서 못 버리겠더라고요. 대신 스탠드를 쓰는 시간을 조절해봤어요. 밤 11시 이후엔 그냥 다른 조명으로 바꾸고, 이 스탠드는 낮에만 쓰려고 했죠. 근데 문제는, 낮에는 안 깜빡이더라도 밤이 되면 여전히 깜빡입니다. 그러니까 스탠드가 아니라 제 집 일정표를 알고 있는 거예요.

한 번은 진짜로 테스트해봤어요. 밤 10시 30분에 일부러 스탠드를 켜지 않고 가만히 기다렸는데, 켜지지 않았는데도 손끝 감각이 이상하더라고요. 물론 그건 제 착각이겠지만, 이상하게 “지금 뭔가를 준비 중”인 느낌이 들었어요. 그날은 공부가 아니라 스탠드 관찰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중고를 사면 원래 이런 건가? 아니면 제가 운이 좀… 독특한 건가 싶었죠.

며칠 뒤에야 결정했습니다. 전기 쪽 전문가를 부르기엔 돈이 아까워서, 스탠드를 분해하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어요. 그런데 분해하려고 밑판 나사를 풀다가 깨달았습니다. 제가 산 게 “스탠드”가 아니라 “스탠드라고 불리는 뭔가”였다는 걸요. 나사가 한두 개는 헛도는 느낌이고, 내부는 엄청 간단하게 조립돼 있었어요. 마치 누군가 급하게 포장해둔 흔적처럼요. 그 순간 저는 확신했습니다. 이 스탠드는 깜빡이는 게 고장이라기보다, 원래 하던 예술이었던 겁니다.

결국 오늘은 아예 스탠드 전원을 빼놨어요. 그리고 다른 조명으로 밤을 보내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허전하더라고요. 깜빡일 때는 짜증났는데, 막상 안 깜빡이니까 집이 너무 조용해요. 오늘도 밤 10시쯤 되면, 제 손이 무의식적으로 스위치 쪽으로 가더니 멈춥니다. 그러다 혼자 생각해요. “저 스탠드가 깜빡인 건 나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라, 내가 밤에 얼마나 부지런한지 확인하려고 그랬나?”… 괜히 미안해져서 전구는 오늘도 새 걸로 바꿔 놓을까 고민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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