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약속 시간에 계속 사라지는 사람
거래 약속 시간에 계속 사라지는 사람을 겪고 나서, 저는 ‘시간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랑만 거래해야 하나 싶어졌습니다. 진짜로요. 처음엔 제가 예민한 줄 알았는데, 그 사람은 매번 약속 시간만 딱 오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더라고요. 오늘도 “10분만 일찍 나올게요!” 하더니, 막상 제가 도착하자마자 연락이 끊긴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처음 거래는 신뢰로 시작했어요. 중고 전자기기였고 상대도 말투가 깔끔했거든요. 장소는 딱 정해졌고, 시간도 “오늘 7시 정각”이었습니다. 저는 6시 55분부터 대기하며 카페 음료만 두 잔 마셨어요. 그런데 7시가 되자마자 상대가 보이질 않습니다. 문자에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만 연달아 오고, 정작 그 ‘조금’이 끝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길 막혔나?’ 싶어서 10분 정도 더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7시 10분쯤 되니까, 메시지가 읽음 표시가 안 뜨는 겁니다. 아예 씹히는 느낌이랄까요. 전화를 걸면 벨은 울리는데, 연결이 안 됩니다. 그 사람의 마지막 답장은 이랬어요. “지금 막 자리 옮기고 있어요. 곧 나올게요!” 자리 옮기면 저도 같이 옮겨야 되는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
두 번째 거래에서도 비슷했어요. 이번엔 게임 아이템이었고, 시간은 “내일 12시, 역 앞”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점심시간을 통째로 비워뒀고, 역 앞 벤치에서 하염없이 기다렸습니다. 12시 정각, 아무도 안 보이더니 12시 3분에 갑자기 “지금 지하철 탑승 중이에요”라고 오더라고요. 그런데 그 메시지를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제 눈앞에 있는 역은 ‘지하철’이 아니라 ‘그 사람 인생의 결말’ 같았습니다.
제가 “지하철이면 역을 알려주시면 될 것 같은데요?”라고 묻자, 또 답이 오는데 그게 문제예요. “아, 지금 역이 달라요. 잠깐만요. 다시 말씀드릴게요.” 다시 말씀드릴게요가 세 번째 거래까지 이어졌습니다. 저는 이쯤 되면 눈치가 생기더라고요. 그 사람은 약속 시간에 사라지는 게 아니라, 약속 자체를 ‘타이머가 울리면 종료되는 게임’처럼 취급하는 것 같았어요.
세 번째는 제가 실수였던 걸로 치려고 했습니다. 이번엔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기로 했거든요. 시간도 “오후 3시 30분, 편의점 앞”으로 정확했고, 주소도 링크까지 줬습니다. 그런데 3시 27분에 상대가 먼저 “지금 나가고 있어요” 하더니, 3시 30분이 되자마자 그 톡방이 조용해졌습니다. 편의점 앞에서 사람 구경하다가 20분쯤 후에 다시 연락이 오더라고요. “죄송해요. 제가 지금 차에서 내리다 보니까…”
차에서 내리다 보니까요? 그럼 왜 시간은 정각으로 잡고, 왜 저는 편의점 앞에서 20분을 ‘차에서 내리는 순간’처럼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그 다음 문장이 더 웃겼어요. “혹시 지금 잠깐만 다른 데 갈까요? 거기 사람 많아서요.” 아니, 지금까지 사람 많아서 못 만난 적은 없었나요? 제 기준에선 사람이 많은 게 문제가 아니라,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네 번째 거래를 포기했습니다. 포기할 때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상대에게 “다음엔 가능하면 시간 확정 후에만 부탁드려요. 저는 기다리는 게 체질이 아니라서요”라고 했더니, 그 사람이 반대로 답을 했습니다. “저도 기다리기 싫은데 거래가 자꾸 깨져요.” 이 무슨… 기다리기 싫다는 말이 제 입장에서는 제일 오래 깨지지 않는 문장처럼 들렸습니다.
마지막으로 그 사람을 ‘거래 약속 시간에 계속 사라지는 사람’이라고 별명 붙여줬습니다. 근데 오늘도 가끔 생각나요. 그 사람은 약속 시간이 되면 어디로 사라지는 걸까, 사실은 저를 피해 간 게 아니라 자기 인생에서 뭔가를 정리하다가 타이밍이 꼬인 걸까. 어쩌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약속 시간이 되면 본인이 제일 먼저 잊혀지는 타입일지도요. 그래서 저도 이제는 약속 시간 딱 맞춰 기다리기보다, 마음을 먼저 도착시키고 기다림은 조금만 하는 쪽으로 룰을 바꿔봤습니다. 결국 거래는 물건보다 타이밍이더라고요—타이밍 잘 맞는 사람을 찾는 게 제일 어려운 거래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