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복지 포인트가 사라진 날
사내 복지 포인트가 사라진 날, 나는 분명히 오전만 해도 “오늘 점심은 뭐 먹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회사 복지 앱에 들어가서 잔액을 슬쩍 봤는데 12,430원이 딱 떠 있거든. 그런데 점심시간 다 됐을 무렵, 같은 화면에서 잔액이 0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새로고침도 안 했는데 말이다.
처음엔 내가 잘못 본 줄 알았다. 그래서 다시 로그인하고 앱을 완전히 껐다 켰다. 그랬더니 이번엔 0원이 더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옆자리 대리님이 “야, 너도 그래?” 하길래 같이 화면을 보여줬는데, 대리님도 같은 표정이었다. 표정이랄까… 사람이 멀쩡하다가 갑자기 비밀번호를 까먹은 사람 같았다.
점심은 일단 회사 식당으로 갔다. 식판 들고 줄 서 있는 동안에도 손가락이 계속 화면에 갔다. 잔액이 사라진 게 그냥 앱 버그일 수도 있으니까, 혹시 모르니 쿠폰함부터 눌러봤다. 그런데 쿠폰함도 텅 비어 있고, “이용 가능한 서비스가 없습니다”라는 문구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그 문구가 이렇게까지 차갑게 느껴질 일인가 싶었다.
복지 담당 부서에 문의를 넣으려 했는데, 문의 양식이 “시스템 점검 중”으로 바뀌어 있었다. 점검 중이면 나한테는 뭐가 점검 중인지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나는 계속 잔액 0원만 확인하고 있었다. 동료들 단톡방엔 “나만 그래?”가 폭발했고, 곧 “나도 0원”이 연달아 붙었다. 채팅이 아니라 추모글 같았다.
그날 오후 회의에서 대표님이 딱 한 문장 던졌다. “복지 포인트는 전사 시스템 전환 과정에서 일시 조정됩니다.” 일시 조정이라니, 그 말의 무게가 너무 가벼웠다. 일시 조정이면 내 돈도 잠깐만 잠들었다가 다시 돌아와야 하는데, 화면 속 숫자는 계속 깜빡이지 않고 그대로 0원이었다.
더 웃긴 건, 같은 시간에 영업팀 쪽은 “포인트로 상품권 결제했는데 결제가 됐대”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니까 완전 0이 된 게 아니라, 누군가는 쓸 수 있고 누군가는 못 쓰는 구조였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내가 왜 하필 오늘 결제를 안 했지”라는 자책과 “아니 그럼 왜 내 화면만 이렇게…”라는 원망이 동시에 올라왔다. 마음속에 회계 장부가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결국 퇴근 직전에 복지 앱 공지사항이 떠 있었다. 글은 짧고 단정했다. “복지 포인트 운영 정책이 변경됩니다. 기존 포인트는 환산 후 재지급 예정입니다.” 환산… 재지급… 예정… 이 단어들이 한꺼번에 나오면, 사람은 그 자리에서 시간감을 잃는다. 오늘이 내일이 되고, 내일이 다음 주가 될 것 같은 그 느낌. 특히 “환산”은 늘 내 쪽이 손해 보는 단어로만 들린다.
다음 날 아침, 회사 로비에서 다들 커피를 들고 서로 눈치 보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떤 분은 “재지급 되면 댓글로 인증해라”라고 했고, 어떤 분은 “인증 말고 계산부터 해라”라고 받아쳤다. 나도 잠깐 스마트폰을 들었다가, 화면이 또 0원인 걸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날은 이상하게도 다들 말수가 줄었고, 대신 커피만 유난히 진해 보였다.
그리고 사흘 뒤, 드디어 앱에 새 잔액이 생겼다. 정확히 얼마가 들어왔냐면… 원래 있던 금액보다 조금 적었다. 물론 “정책 변경에 따른 환산”이라는 명목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그 금액이 딱 점심 한 끼에 맞는 수준이었어. 그러니까 “잃었다”기보단 “어쨌든 먹고는 살게 해줄게” 같은 배려랄까. 나는 그날 회의실에서 제일 먼저 웃음이 나왔다.
복지 포인트가 사라진 날, 사람들은 돈을 잃기도 했지만 동시에 서로의 표정을 기억하게 됐으니까. 그게… 이상하게도 다음번부터는 잔액 확인 버튼을 더 자주 누르게 만드는 부작용으로 남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