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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행사에서 ‘누가 운전해?’로 끝난 하루

2026-10-27 05:41:15 조회 0 댓글 0 추천 0 글 신고 0

가족 행사라고 해서 거창한 건 없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날 제 머릿속에 남은 건 딱 한 문장이었습니다. “누가 운전해?” 그 말이 세 번쯤은 들린 것 같은데, 문제는 그때마다 상황이 한 단계씩 더 이상해졌다는 거예요.

아침부터 우리 집은 이미 전쟁 중이었어요. 식탁엔 양념장, 과일 접시, 그리고 운전 담당을 둘러싼 눈치게임이 차려져 있었죠. 어른들은 다들 “버스 타면 편하지” 같은 얘기를 꺼내지만, 막상 짐이 늘어나면 그 말이 갑자기 사라지더라고요. 저는 속으로만 “일단 저 말고 누가”라고 외치며, 손에 물티슈를 쥐고 체념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집안 분위기는 늘 그렇듯 막내인 제 동생이 주도했어요. “형, 네가 새 차도 봤잖아. 너 운전하면 되지!” 하고 말하더니, 그 다음엔 “아니면 아빠가…”로 슬쩍 방향을 바꿉니다. 아빠는 “나? 난 아침에 족발 냄새만 맡으면 졸려” 같은 소리를 하며 버티고, 엄마는 “졸려도 운전은 해야지”라고 단호하게 한 마디를 얹죠. 그 순간, 모두가 같은 단어를 찾는 것처럼 입을 모았어요. 누가 운전해?

결국 목적지는 어딘가요? 가족 행사는 늘 애매합니다. “조금만 멀어도 괜찮지?” 이런 말이 시작이었고, 어느새 네비는 낯선 도로를 안내하고 있었어요. 저희 차는 네 사람이면 딱 편한데, 행사 당일엔 삼촌의 골프채가 추가되고, 이모가 가져온 커다란 떡 케이크 상자가 트렁크를 장악했죠. 저는 운전석에 앉기 직전인데도 손등에 이미 땀이 차올랐습니다. 왜냐면, 운전대를 잡는 순간부터 ‘책임자’로 분류되거든요.

운전석에 앉으니 또 문제가 생겼어요. 동생이 조수석에서 라디오를 켜더니 볼륨을 올립니다. “여기까지 오는데 기분 좋아야지!”라며 당당했죠. 근데 아빠가 그 라디오를 듣고는 “이거 너무 신나서 운전 집중 안 돼”라고 말해요. 엄마는 “신나는 건 나중에고, 지금은 안전!” 이래요. 저는 방향지시등을 켜고도 뒤에서 들리는 말 때문에 정신이 한 번씩 흔들렸습니다. 정말 신기한 게, 차가 달리는 동안도 ‘누가 운전해?’는 계속 계산되고 있었다는 거예요. 다들 입으로는 안 하지만 눈빛으로 계속 묻더라고요.

도착해서도 행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장소는 넓은데 주차가 복잡했거든요. 누가 봐도 “차를 두 대로 나눠서 가야” 하는 구조인데, 다들 자기 차를 가져온 건 아니었어요. 누군가는 “내가 차 안 가져왔으니까 난 괜찮아”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나는 집에서 쉬다가 온 거라 괜찮아” 같은 논리를 펼치죠. 그러다가 주차장 앞에서 다시 그 말이 나옵니다. “누가 운전해?” 아예 현수막처럼요. 마치 이 문장이 가족 모토인 것처럼요.

저는 그때 깨달았어요. 운전을 둘러싼 논쟁은 사실 거리나 주차 문제보다, ‘누가 다음에 또 나가야 하냐’의 문제더라고요. 누군가 운전을 하면 그 사람은 다음 일정까지 자동으로 담당자가 돼요. 그래서 다들 자기를 숨기려 하고, 또 누군가는 책임 회피가 아니라 “나는 능력이 있으니 안전하게” 같은 포장으로 승부를 보려 합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왜 이렇게 다 비슷하게 말하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운전이 문제 없어”라는 말이 나오면 90% 확률로 그다음엔 “근데 오늘 좀 피곤해”가 따라붙거든요.

행사 중간에는 제가 계속 물어보는 입장이 됐습니다. “혹시 차 다시 옮겨야 해요?” “혹시 누가 나갈 일이 있어요?” “혹시 누가 운전해야 할 상황이 생겨요?” 이렇게요. 질문을 미리 던지면, 상대가 “아니야, 넌 가만히 있어”라고 해줄 것 같았거든요. 근데 가족은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단단했어요. 다들 “걱정하지 마, 알아서 정해져”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결정을 미룹니다. 결국 맨 마지막엔 누가 운전하냐를 두고 다시 한 번 모여서 합의를 보는 분위기가 됐고, 제 앞에 놓인 건 또 그 문장이었죠.

해가 지고 돌아갈 때쯤, 저는 진짜로 웃음이 나왔어요. 다들 피곤해서 말수가 줄었는데, 눈치만 늘어나는 그 느낌. 그런데도 누군가는 끝까지 책임을 피하려고 하더라고요. 엄마가 “자, 이제 집에 가자”라고 말하자마자 아빠가 자연스럽게 제 쪽을 봅니다. 동생도 동시에 제 쪽을 보죠. 저는 속으로 “설마 또?” 했는데, 그 순간 이모가 한마디를 합니다. “운전은 누가 해도 되는데, 내일 아침에 누가 설거지해?” 그 말이 나오자마자 모두 얼굴이 풀려요. 운전은 임시직이고, 설거지는 평생직인 걸 다들 알고 있었던 거죠. 그렇게 우리는 “누가 운전해?” 대신 “누가 설거지해?”로 결론을 냈고, 저는 그날 처음으로 진정한 운전은 마음가짐이라는 걸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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