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이 사주신 신발이 안 맞아서
부모님이 새 신발을 사주신 날, 저는 “드디어 내 발에 딱 맞는 걸 찾았나?” 싶어서 괜히 기분이 좋았어요. 근데 집에 오자마자 양말 신고 신발을 신어보는 순간부터 제 발이 아주 정직하게 항의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날 제 인생이 이렇게까지 발끝부터 꼬일 줄은 몰랐습니다.
처음엔 “신발이 새 거라 약간 뻣뻣하겠지”라고 합리화했어요. 부모님은 시장에서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고르셨고, 가격도 나름 괜찮아 보였거든요. 저는 감사한 마음으로 벗지 않고 몇 분만 더 신어보려고 했는데, 다섯 분쯤 지나니까 엄지발가락 쪽이 칼로 긁는 느낌이 나면서 시선이 자연스럽게 바닥으로 내려갔습니다.
“어, 이거 사이즈가…?” 싶었죠. 겉으로 보기엔 분명 제 사이즈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신발을 신으면 제 발이 안쪽으로 눌리면서, 마치 신발이 제 발을 ‘정확한 형태로 재단’해주려는 것처럼 꽉 잡아당기는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한쪽만 그런 게 아니라 양쪽 모두가 비슷하게 아프니까, 이건 제가 예민한 게 아니라 신발이 설계상 문제일 확률이 높았어요.
그래도 부모님께는 말하기가 좀 그랬습니다. “사주신 건 좋은데 안 맞아요”라고 하면 기분이 상하실까 봐요. 그래서 전 ‘신발 적응 기간’ 같은 걸 만들어서 버텼어요. 집 안을 왔다 갔다 해보기도 하고, 신발장 앞에서 10분씩 서 있기 같은 이상한 도전을 했는데, 통증은 점점 커지고 제 걸음만 점점 짧아졌습니다.
결국 저녁이 되자 가족들이 거실에 모였고, 저는 용기 내서 “아, 혹시 이거 제가 신으면 조금 꽉 끼는 느낌이…?”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부모님은 “원래 처음엔 그래. 가끔은 길이 조금 더 늘어나기도 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문제는 제 통증이 ‘조금’이 아니라 ‘여기서 멈추면 발이 항의할 것 같은’ 급이었다는 점입니다. 그 말 듣는 순간 더 억울해졌어요. 늘어나면 좋겠는데, 제 발은 늘어날 생각이 없거든요.
그래서 다음날 아침, 저는 신발을 신고 다시 확인해봤습니다. 발등 쪽이 눌리는 느낌도 있고, 뒤꿈치 부분은 미세하게 계속 밀려서 걸을 때마다 살짝씩 ‘톡, 톡’ 걸리는 느낌이 났어요. 발이 신발 속에서 춤을 추는 게 아니라, 경고등이 켜지고 있는 상태였달까요. 결국 저는 깔창을 빼보기도 하고 양말 두 겹을 신어보기도 했는데, 결과는 더 최악이었습니다. 신발은 늘어나는 게 아니라 제 컨디션을 먼저 꺼뜨리더라고요.
부모님은 그래도 포기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래도 한 번 더 신어보고, 그래도 안 되면 교환 알아보자”라고요. 솔직히 저는 그 말이 너무 감사하면서도 동시에 엄청 난감했어요. 제가 교환을 하면 부모님이 “그럼 내가 잘못 샀나?” 같은 생각을 하실까 봐요. 그래서 저는 아주 사소한 방식으로 타협을 시도했습니다. 신발을 신고 외출할 때는 시간을 짧게 잡고, 집에서는 신발을 계속 벗어두는 식으로요. 그러니까 통증은 줄어드는데, 대신 제 삶의 리듬이 깨졌습니다. 외출 준비가 신발과의 협상이 되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며칠 뒤, 저는 결정적으로 ‘감’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부모님께 솔직하게 “이건 적응이 아니라 사이즈나 형태가 안 맞는 것 같아요. 발이 너무 눌려서 오래 신으면 위험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어요. 그때 부모님 표정이 잠깐 굳더니, 곧바로 “그럼 교환하자. 네 발이 먼저야”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말을 듣고 마음이 한 번 놓였고, 동시에 제가 그동안 너무 혼자 참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님은 제가 상처받을까 봐 먼저 사주신 거였는데, 제가 또 괜히 죄송해서 더 참았던 거죠.
교환을 하러 갔을 때, 매장 직원분이 신발을 보더니 “사이즈는 맞는데, 발볼이나 앞코 형태가 다를 수 있어요”라고 하셨어요. 그 말이 너무 정확해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제 발은 ‘길이’가 아니라 ‘모양’에서 불만을 품고 있었던 거예요. 부모님도 그제야 “아, 그래서 처음 신을 때 그렇게 표정이 굳었구나” 하고 이해하신 눈치였습니다. 저는 그 순간 표정 연기가 들킨 것 같아서 괜히 더 창피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했어요.
결국 제대로 맞는 신발을 다시 받았고, 지금은 잘 신고 다닙니다. 다만 한 가지는 남았어요. 부모님이 사주신 신발은 언제나 ‘기분’이 먼저고, 그 다음에 ‘물리’가 와야 한다는 사실요. 그리고 어떤 신발은 발에 닿기 전에 이미 대화부터 하더라고요. 저는 이제 신발을 신기 전에 잠깐 숨을 고르고, 발이 말하기 전에 먼저 물어보게 됐습니다. “이거… 오늘도 우리 사이 괜찮아?” 하고요. 그 질문만 잘하면, 신발도 덜 삐치고 제 걸음도 덜 작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