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이 만든 엑셀에 내가 들어가 있음
팀장이 만든 엑셀에 내가 들어가 있음. 처음엔 “어? 내가 뭘 잘못했나?” 싶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잘못한 건 없고 그냥… 너무 선명하게 ‘내 존재’가 박혀 있더라.
그날도 평소처럼 팀장님이 회의 끝나자마자 엑셀 파일을 던지듯 공유하셨다. “다들 입력해요. 이번 주 진행상황 체크할 거예요.” 말투는 늘 친절했는데, 엑셀을 열자마자 제목 칸부터 이상했다.
파일명부터가 뭔가 수상했다. “프로젝트_진행현황_최종(진짜최종)_v7” 이런 거 말로만 보통이 아닌 느낌. 그리고 표가 쭉 있었는데, 열람 권한 같은 걸 떠나서 내가 담당자로 딱 찍혀 있었다. 이름이 들어간 칸을 보는데,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더라. 내가 그 프로젝트에 지금 투입된 게 맞나? 내가 지난번에 “네, 해볼게요” 한 적이 있나?
내가 멍하니 셀을 보고 있으니까 옆에서 누가 “어? 너 이름 거기 있네” 하고 툭 던졌다. 그 말 듣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왔는데, 이상하게도 표 옆에 작은 메모가 붙어 있었다. 메모에는 ‘진행속도 체크 필요’라고 되어 있더라. 이게 칭찬인지 경고인지 해석이 안 돼서 더 찝찝했다.
팀장님한테 바로 물어볼까 하다가도, 또 물어보면 “아, 그건 자동으로 잡힌 거예요” 같은 소리를 들을 것 같았다. 실제로 팀장님은 엑셀을 만들 때 늘 뭔가 자동화 마법을 쓰는 사람이다. 필터는 신기하게 잘 되고, 드롭다운도 다 들어가 있고, 셀 서식은 왜 그렇게 친절한지 모르겠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어떻게 들어갔지?”가 아니라 “팀장이 어떤 논리로 나를 넣었지?”가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우선 차분하게 확인했다. 담당자 칸을 클릭해보면 내가 들어간 행 말고도 다른 사람들 이름이 있었는데, 특이한 건 ‘내 옆에 적힌 작업’이 딱 내가 최근에 하긴 한 일과 겹치고 있었던 거다. 다만 내가 그 업무를 한 기간이랑 엑셀에 적힌 일정이 약간 어긋나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끝났습니다”라고 말한 게 있는데도, 엑셀은 “진행중”으로 표시하고 있었던 셈.
여기서부터가 웃겼다. 그 엑셀에는 진행률을 계산하는 수식이 들어가 있었는데, 그 수식이 내 칸 값이 바뀌어야 정확하게 움직이게 되어 있었다. 즉, 내가 뭘 안 했냐는 게 아니라… 내가 정보를 ‘업데이트하지 않았으면’ 엑셀이 계속 나를 진행중으로 붙잡아두는 구조였던 거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팀장님이 만든 건 엑셀인데, 엑셀 안에는 팀장님의 마음도 들어있다는 걸.
다음 날 팀장님이 또 공유 링크를 올렸다. “어제 엑셀 업데이트된 거 확인했죠? 이번엔 더 깔끔하게 정리했어요.” 나는 댓글로 “저는 확인했습니다” 하고 끝냈다. 그런데 확인하고 나서도 마음이 찜찜해서, 내가 혹시 모르는 사이에 ‘진행속도 체크 필요’라는 문구가 다른 사람들한테도 있는지 봤다. 그랬더니 내가 유일했다. 나만 따로 체크가 붙어 있는 걸 보고, 웃긴데 또 진지하게 서늘해졌다.
결국 점심시간에 내가 엑셀 업데이트를 해놨다. “완료”로 바꾸고, 메모도 내가 아는 범위에서 깔끔히 적었다. 그리고 퇴근할 때까지 회사 메신저는 조용했다. 그런데 퇴근하고 집에서 슬쩍 다시 보니까, 그 메모가 아예 다른 문구로 바뀌어 있었다. ‘진행 완료, 다음 단계 요청 확인’. 내가 엑셀을 바꾸자마자 팀장님의 감정도 같이 정리된 느낌이랄까. 그 순간 “아, 이건 감시가 아니라 동기부여였다”라고 스스로 합리화하면서도, 솔직히 너무 귀여워서 피식 웃음이 났다.
지금도 그 엑셀은 잘 돌아간다. 그런데 한 가지는 확실하다. 팀장이 만든 엑셀은 단순히 표가 아니라, 팀장의 시선이 담긴 살아있는 생물 같은 거다. 다음에 누가 “엑셀 왜 또 업데이트해요?”라고 말하면, 나는 그냥 웃으면서 “팀장이 만든 거라서요. 거기에 있으면… 언젠가 알아서 살아납니다”라고 말해줄 것 같다. 괜히 무서운데, 또 은근히 기대되는 그 느낌. 그게 팀장님 엑셀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