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자리에서 상대가 먼저 묻는 질문
소개팅 자리에서 상대가 먼저 묻는 질문이라는 게 있잖아요. 저는 보통 “어떤 데 좋아하세요?” 이런 무난한 걸 기대했는데, 그날은 시작부터 좀 달랐어요. 식당에 들어가서 인사하고 앉자마자, 상대가 제 얼굴을 한번 보고는 아주 태연하게 한 마디를 던지더라고요.
“혹시, 소개팅 자리에서 제일 먼저 묻고 싶은 질문 있으면 해보세요.”라고요. 아니, 이게 무슨 동네 복권 같은 말을… 제가 멘탈이 살짝 흔들리는데, 그래도 분위기니까 가볍게 받아쳤죠. “저는…” 하면서 고민하는 척하다가, 결국 “아, 그러면 일 얘기부터 해도 될까요?” 했더니 상대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어요.
여기서부터가 문제였어요. 보통은 제가 질문을 던지면 상대가 답하는 구조가 되잖아요. 근데 그분은 제가 질문하기도 전에, 이미 자기 속마음을 꺼내듯 이어가더라고요. “일 얘기 좋아하세요?”라고 다시 묻는 게 아니라, “일 얘기 하다가 갑자기 성향 테스트 들어가도 괜찮아요?” 같은 말이 나왔습니다. 저는 “네?” 하고 되묻고, 그때부터 진짜 소개팅이 아니라 인터뷰가 시작된 느낌이었어요.
상대가 또 먼저 묻더라고요. “친구가 연애 상담을 하면, 당신은 보통 어떤 타입이에요?” 이건 또 무슨 타입… 저는 순간 “상담을 잘 들어주는 타입”을 떠올렸는데, 상대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그냥 솔직하게 말했어요. “일단 들어주고, 그다음에 현실적인 조언을 해요.” 그러자 상대가 눈을 반짝이면서 “그럼 당신은 ‘공감 후 처방’형이네요.”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말이 약간 너무 정확해서 당황했는데, 상대는 그 다음 질문을 더 빠르게 던졌어요. “그럼 소개팅에서 듣고 싶은 말은 뭐예요?” 여기에 또 저는 제대로 준비가 안 됐죠. “음… 저는 관심 받으면 좋죠.” 이 정도로 말했는데, 상대는 “그럼 ‘잘 챙겨줄게’ 듣는 걸 좋아하시는 스타일이네요.”라고 또 한 번 결론 내리더라고요. 저는 아, 이분 혹시 사람을 보자마자 결과지 뽑는 기계 같은 건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그냥 재미있는 사람이다, 하고 넘어갈 수 있었어요. 진짜 웃긴 건 제가 “저는 상대가 먼저 편하게 해주는 게 좋아요”라고 말하니까, 상대가 아주 자연스럽게 칼같이 정리하듯 말하더라고요. “그럼 이렇게 해볼게요. 앞으로 질문은 제가 먼저 하고, 답은 당신이 짧게 해요. 대신, 대신!” 하더니 잠깐 멈추고 제 눈을 봤어요.
“대신 답이 길어지면, 제가 중간에 ‘아, 이건 이미 마음이 있네’라고 말할게요.”라고요. 저는 그 순간 웃음이 나왔는데, 동시에 마음 한구석이 찔리는 기분이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원래 대화할 때 감정이 좀 묻어나면 길어지는 편이거든요. 근데 그걸 상대가 너무 가볍게, 너무 능숙하게 말하니까… 저도 모르게 “아, 지금 내가 좀 길어지려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뒤로는 둘 다 웃기게 진행됐습니다. 상대는 질문을 던지고, 저는 답을 짧게 하려고 애쓰고, 상대는 제 답이 살짝만 길어져도 “어? 또 길어지네?” 하면서 놀리듯 받아쳤어요. 그런데 그게 기분 나쁘게 압박하는 느낌이 아니라, 뭔가 긴장을 풀어주는 농담 같아서 오히려 편해지더라고요. 저는 소개팅에서 이런 식으로 분위기가 정리된 적이 별로 없어서, 계속 신기했습니다.
마지막 즈음에는 상대가 가장 중요한 질문을—라고 해야 하나—조용히 던졌어요. “근데… 소개팅 자리에서 사람이 진짜 원하는 건 뭔지 알아요?” 저는 또 준비가 안 돼서 “어… 마음이 편한 거요?”라고 말했거든요. 그랬더니 상대가 한 박자 쉬고는, “맞아요. 근데 그 ‘편한 것’이요, 사실은 상대가 먼저 묻는 질문이 어디까지 편하게 만들어주느냐로 결정돼요.”라고 말하더라고요.
그 말이 은근히 설득력 있어서, 마지막에 계산하고 나올 때도 이상하게 기분이 남았어요. 집에 가서 생각해보니, 그날 상대가 먼저 묻는 질문들은 전부 다 “나를 알아가자”라기보다 “우리 둘 다 편해지자”에 더 가까웠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아직도 그분이 첫 질문으로 던졌던 문장이 생각나요. “소개팅 자리에서 제일 먼저 묻고 싶은 질문 있으면 해보세요.” 결국 제가 못 해본 질문은, 그날 상대가 다 해버린 거죠.
그 소개팅 덕분에 저는 그 뒤로 누가 먼저 질문을 던지든, 그냥 가볍게 받아치면 된다는 걸 배웠습니다. 물론… 다음 소개팅에서도 또 먼저 묻는 질문이 나오면, 저는 이번엔 짧게 답하는 연습부터 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