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방에 갑자기 초인종 눌린 이유
자취방에 갑자기 초인종 눌린 이유가 뭔지 한참 고민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배달”이 아니라 “오해”가 초인종의 정체더라.
그날도 평소처럼 퇴근하고 들어와서 라면 끓이는데, 띵동 하고 소리가 딱 울리자마자 국물이 튀기기 직전이었다. 저는 속으로 “나 지금 설거지 안 했는데…?” 하면서도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지. 현관문 구멍 너머로 아무도 안 보이고, 대신 복도에 누가 숨 쉬는 소리 같은 게 들리는 거야. 근데 바로 또 한 번 띵동. 진짜로 타이밍이 악의적이더라.
문을 열기 전에 우리 집이 어떤 상태인지부터 떠올렸다. 그날 세상은 너무 복잡했거든. 베란다엔 빨래가 아직 덜 마른 상태였고, 방 안엔 택배 박스가 반쯤 세워져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문앞 매트가 살짝 젖어 있었는데 그게 물인지 뭔지 나도 애매했다. 그런 상황에서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을 마주하면 솔직히 난 그 사람의 멘탈도 깨질 것 같았다.
그래도 열어야 하니까 열었는데, 문 앞에는 동네 아저씨가 서 계시더라. 근데 아저씨가 내 얼굴을 보자마자 “혹시… 여기 302호 맞죠?”라고 물어보는 거야. 나는 당연히 “네 302호인데요” 하고 대답했지. 그랬더니 아저씨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면서 “아, 다행이다. 방금 관리실에서 연락이 왔는데…”라며 설명을 시작했다.
아저씨 말이 좀 길었어. 관리실에서 누가 “302호에서 자꾸 종이 울린다”라고 신고를 했다는 거야. 그런데 이상한 게, 아저씨도 자기 집에서 들린 건지 모르겠고, “밤마다 누가 누르는 것 같다”는 식으로만 들었다더라. 그러면서 아저씨가 내 문 손잡이를 보더니, “문 손잡이가 좀… 이상하게 닳아 있네요. 혹시 누가 문을 반복해서 누르나?”라고 하시는 거다. 저는 그 말 듣자마자 속으로 “내가 닳게 한 게 아니라 원래 손잡이가 그런 거예요…”라고 변명할 뻔했어. 근데 더 웃긴 건, 내가 그날 문을 닳게 할 정도로 뭔가 했다는 기억이 전혀 없다는 거.
여기서부터 진짜 이상해지기 시작했지. 아저씨는 “그러니까 혹시라도 관리실에 연락해주실 수 있나요? 신고가 여러 번 들어가면 곤란하거든요”라고 말하더니, 갑자기 휴대폰을 보여주며 “관리실에서 보낸 사진인데, 누가 누르는 손이랑… 그러니까, 대충 이런 느낌이래요” 이러는 거야. 사진을 보니까, 손이 아니라 그냥 초인종 버튼 주변이 찍혀 있는데 조명이 이상하게 반사돼서 뭔가 손가락이 여러 개처럼 보이는 거였어. 진짜로 누가 보기엔 “범인” 잡은 사진처럼 보이더라. 그걸 들고 온 아저씨가 나를 범죄자로 보는 얼굴이었단 말이지.
나는 “아저씨, 전 오늘 퇴근하고 들어오면서 한 번 눌렸고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에요”라고 말했는데,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래도 밤에 계속 울리면… 누군가가 장난 치는 걸 수도 있으니”라고 하시더라. 그 말이 끝나자마자, 우리 집 안쪽에서 갑자기 또 띵동 하고 울리는 거야. 나는 문 앞에 서 있던 상태라 더 당황했고, 아저씨는 더 크게 “봐요!”라고 외쳤지. 그런데 그 순간 깨달았어. 초인종이 아니라 우리 라면 냄비 위에서 끓는 김이 아니라… 베란다 쪽 창문에서 바람이 세게 들어오면서 현관문 쪽에 달린 뭔가가 움직인 거였어. 그러면 초인종 버튼이 살짝 눌렸다가 다시 원복되는 거지.
근데 문제는 그걸 누가 먼저 알아차렸냐는 거야. 내가 라면 끓이면서 창문을 반쯤 열어뒀는데, 바람이 세게 불면 문이 살짝 덜컹하거든. 아마 전날 밤부터 바람이 그 방향으로 부는 날이었고, 내 집 현관문도 “띵동”을 습관처럼 흉내 냈던 거지. 나는 아저씨에게 “아저씨 죄송해요. 방금 창문 바람 때문에 문이 쳐서 버튼이 눌린 것 같아요”라고 말했고, 아저씨는 한 박자 멈칫하더니 갑자기 웃음을 참는 표정이 되더라.
그 다음부터는 순서가 이상하게 흘러갔어. 아저씨는 관리실에 전화해서 “신고 건은 오인일 가능성이 크다. 바람 때문에 버튼이 눌린 듯하다”라고 말했다고 하고, 나는 그제야 라면을 제대로 먹을 수 있었어. 그런데 집에 혼자 남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내가 제일 먼저 해야 할 건 라면이 아니라 “내가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처럼 보일 만한 상황이었나” 점검하는 거였더라. 결론은 간단해. 내가 초인종을 누른 게 아니라, 내 자취방이 초인종을 눌러서 민망한 오해를 불러온 거야.
지금도 가끔 현관문 쪽에서 띵동 소리가 나면 심장이 먼저 반응해. 근데 한 번쯤은 꼭 확인해. 창문 바람인지, 버튼 고장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은 내가 범인으로 기록되기 전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자취방에 갑자기 초인종 눌린 이유는, 누군가의 방문이 아니라 우리 집의 바람이 ‘안녕’ 하려고 버튼을 눌렀던 거다. 다음엔 바람한테도 경고문 하나 붙여둘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