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생 냉장고에 꼭 들어있는 이상한 조합 음식
퇴근하고 집에 오자마자 냉장고 문을 열었다. '오늘은 뭐 먹지?' 하고 기대감에 부풀었는데, 그 안에 기묘한 조합들이 아무렇게나 자리 잡고 있었다. 누가 봐도 한 끼 식사로 쓰일 만한 음식이 아니라, 마치 냉장고 속에서 소재 실험실을 방불케 하는 묘한 분위기였다.
가장 윗칸에는 달걀, 마요네즈, 그리고 유통기한이 한 달이나 지난 김치찌개용 고기 봉지가 나란히 있었다. 달걀은 깨진 자국도 없어서 얼핏 보면 쓸 수 있을 것 같지만, 고기 봉지는 어느 순간부터 냉장고 구석에 방치된 듯한 느낌이 나는 그런 상태라 아무래도 꺼내기가 망설여졌다.
중간 칸으로 눈을 돌리니, 요구르트와 케첩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누가 이런 조합을 냉장고에 넣어 두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갔는데, 그러고 보니 나였다. 아침에 바쁘게 나오다 멀쩡한 요구르트 옆에 케첩도 던져 넣었더라. 저녁에 미친 듯이 배고플 때 먹는 케첩은 자취생에게 진리의 소스다.
냉동실은 또 별세계였다. 피자 한 조각, 얼린 만두, 그리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얼린 깻잎 봉지가 있었다. 깻잎은 냉동하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마 '이것도 얼려두면 오래 가겠지'라는 희망으로 냉동실 안에 자리 잡은 듯했다. 사실 깻잎 얼리는 사람 처음 봤다.
냉장고 문 쪽 선반에는 특이하게도 김, 땅콩버터, 그리고 소주 한 병이 있었다. 김과 땅콩버터가 같이 있다는 게 아무래도 이상한데, 내가 김에 땅콩버터를 발라 먹는다기엔 너무 그릇된 조합이라... 분명 누군가 선물해 준 것일 거라 생각하면서도, 심리적으로 땅콩버터를 아끼느라 김도 덩달아 안 쓰게 되는 이상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가장 신기한 건 바로 고추장과 아이스크림이 한 선반에 따닥 붙어 있었다는 점이다. 양쪽 끝에서도 접근 불가할 것 같은 조합인데, 텅 빈 냉장고 안에서 이 두 녀석만은 꼿꼿이 버티고 있었다. 고추장 한 숟가락에 아이스크림 한 숟가락,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만 언젠가 이 조합을 시도할 용기가 생길까 하는 작은 기대감도 존재한다.
냉장고 문을 닫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취생들의 냉장고는 사실 생활의 축소판이자, 때로는 미래의 나와 현재의 나가 충돌하는 공간이 아닐까 하고. 사고 싶은 것과 먹고 싶은 것, 그리고 실제로 먹는 것 사이의 간극이 이렇게나 큰 줄 몰랐다.
요즘은 냉장고 앞에서 '오늘 뭐 먹지?' 대신 '이 조합 중에 살아남을 친구는 누구냐' 하는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자취생 냉장고만의 은밀한 매력이 아닐까. 세상 사람들은 다 가족과 같이 살지만, 우리 냉장고 속 음식들은 서로 다른 세계에서 온 손님처럼 어색하게 공존하고 있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이상한 조합들을 보면서 웃지 않는 날은 없다는 것이다. 어떤 날은 달걀과 김치찌개용 고기가, 또 어떤 날은 땅콩버터와 아이스크림이 주인공이 되어 나를 배고픔에서 구해준다. 결국 자취생 냉장고란, 매일매일의 작은 드라마 같은 곳이다.
그리고 오늘도 문을 닫으며 다짐한다. '내일만큼은 좀 더 깔끔하게 정리하자' 하고. 근데 내일이 오면 또 똑같은 상황과 마주치겠지 싶으니 피식하게 웃음이 새어나온다. 이상한 조합은 어쩌면 자취생의 삶 그 자체인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