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친척들과의 묘한 긴장감 느낀 순간
명절 아침, 벌써부터 집 안 공기가 무겁다. 친척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어딘가 모르게 긴장감이 흘러넘친다. 설레임 가득한 명절 분위기와는 달리, 나도 모르게 허리가 뻣뻣해진다.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먼저, 삼촌부터 시작된다. 평소에는 무심한 척하던 분인데 올해는 왠지 분위기가 다르다. “요즘 취업은 잘 되고 있냐?”라는 질문 한마디에 심장이 벌렁거린다. 사실 취업 준비가 쉽지 않은데, 그 질문이 마치 시험 문제처럼 느껴진다. 대답을 준비하느라 입만 바쁘게 움직인다.
어머니 쪽 친척들 모임에선 자연스레 결혼 이야기가 터져 나온다. 내가 아직 솔로라는 사실이 모든 사람에게 공개되는 순간이다. “언제 좋은 사람 만날 거니?” 연거푸 쏟아지는 질문에 웃는 얼굴만 단단히 고정시키며 ‘내년에? 누가 알겠나~’ 속으로만 되뇌인다.
이번엔 할머니가 자리를 잡으시고, 친척들 모두가 조용해진다. 할머니표 김치를 맛보며 순간 분위기가 풀어지는 듯했지만, 그건 잠깐이었다. 어느새 삼촌이 “요즘 애들은 너무 너무~ 너무 안 해!”라며 젊은 세대 욕을 시작했다. 순간 모두가 눈치만 보는 분위기.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결국 김치만 계속 집어먹는다.
이 와중에 사촌동생이 갑자기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형/누나 혹시 연봉이 얼마야?” 갑작스러운 질문에 모두가 얼어버렸다. 그 자리에서 누가 연봉을 솔직히 말할 수 있을까? 어른들도 대답을 얼버무리자 분위기는 더욱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난 그 순간 ‘명절이 이렇게 무서울 줄 몰랐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버지 쪽 친척들은 자기 자랑 시간이 시작된다. 누가 더 승진했고, 누가 더 돈을 벌었는지 경쟁하듯 이야기한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 ‘좀 그만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지만 겉으로는 웃음 지으며 맞장구를 친다. 이게 다 ‘가족의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인 걸 알면서도 은근히 스트레스 받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나마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오자 대화 주제가 살짝 바뀌었다. 요리 이야기, 옛날 이야기, 그리고 아이들 이야기로 말문이 열렸다. 긴장감도 점차 누그러지고, 어느새 웃음꽃이 피어난다. 하지만 중간중간 ‘내년에 또 만나면 무슨 얘기 하지?’ 하는 걱정은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명절이 끝날 무렵, 나는 살짝 피곤한 표정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혼자 중얼거렸다. “다음 명절에는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와야지.”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또 다른 긴장감을 향해 스스로 뛰어드는 나를 발견한다. 명절이 주는 묘한 긴장감, 이게 어쩌면 가족의 독특한 사랑법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어쩌면 올 한 해도 이 가족들과 함께라서 참 다행이라는 거. 그리고 이번 명절에 느낀 그 묘한 긴장감이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라는 걸, 천천히 알아가기로 한다. 다음에는 좀 더 여유롭게 웃으면서 맞을 수 있길 바라면서 말이다.